미국의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제재가 오히려 위안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은 미국의 달러 접근 차단 등에 대비해 위안화 국제화를 서두르고 있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본토벨의 스벤 슈베르트 투자전략가는 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간 IT 전쟁 덕분에 위안화 국제화가 더욱 빨리 진행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시작으로 바이트댄스(틱톡), 텐센트(위챗) 등 중국의 IT·인터넷 기업들을 고립시키는 다양한 제재를 하고 있다.

슈베르트 전략가는 "미국의 제재로 세계의 인터넷 문화권이 미국 중심과 중국 중심으로 양분되고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이는 중국이 달러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는 "미국의 IT와 금융 부문에서의 압박에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더 속도를 내고 있다"며 특히 아세안 10개국과의 교역에서 위안화 결제가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40여개국 중앙은행과 위안화 스왑 계약을 맺고, 2015년에는 위안화로 거래하는 '국제 은행간 지급 시스템(CIPS)'을 구축하는 등 위안화 국제화에 노력해왔다. 중국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위상도 차츰 올라가고 있다.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동 전선도 주목할 만 하다. 러시아는 지난해 독자적 국제결제 장치인 '재무 정보 송신 시스템(STFM)'을 설립하고 중국의 CIPS와 연결했다. 세계 200여개국 은행이 쓰는 달러 송금 체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다.

본토벨 자산운용에 따르면 양국 간 위안화와 루블화 거래가 늘어나면서 5년 전 90% 이상이었던 달러 결제 비중이 올 1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갔다.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말 2%에서 지난해말 14%로 급등했다. 달러의 점유율은 30%에서 9.7%로 내려가 위안화와 달러가 역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위안화의 비중은 지난 3월말 2%로 달러, 유로, 엔, 파운드에 이어 5위다. 아직 비중은 낮지만 IMF가 별도로 집계하기 시작한 2016년말의 1%보다는 두 배 올라갔다. 달러의 비중은 같은 기간 65%에서 62%로 내려갔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