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멀어져가는 '외국인 관광객 6천만'…울고 싶은 아베
2030년 외국인 관광객 6000만명을 유치해 일본을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우뚝서게 한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심찬 계획이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3개월 연속 99.9% 감소한데다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카지노형 복합 리조트(IR) 유치 계획은 담당 국회의원의 뇌물 수뢰 혐의로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시설 인정기준도 7개월째 미확정

도쿄지검 특수부는 재판의 증인에게 위증의 대가로 돈을 주려 한 혐의(조직범죄처벌법상 증인 등 매수)로 아키모토 쓰카사 국회 중의원 의원을 20일 체포했다. 아키모토 의원은 IR 유치와 관련해 중국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작년말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는데 이날 다시 구금됐다. NHK 등 일본 미디어들은 아키모토 의원이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증인을 매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7년 8월~2018년 10월 국토교통성 부대신으로 관광정책을 담당했고, 내각부 부대신을 겸임하며 아베 내각의 IR 정책을 주도했다. IR은 카지노와 국제회의장, 전시시설, 호텔 등을 일체화한 복합시설이다. 2025년 전후로 일본의 대도시와 주요 관광지에 세계적인 IR을 유치해 2030년 외국인 관광객 6000만명 시대를 연다는게 일본 정부의 청사진이었다.

IR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아베 내각은 2018년 IR실시법까지 별도로 제정했다. 도박의존증 환자가 늘고 범죄조직의 자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연간 경제효과가 수조엔대에 이른다는 논리로 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요코하마시, 지바시 등 수도권 대도시와 오사카, 아이치, 와카야마, 나가사키, 홋카이도 등이 IR 유치를 표명했다. 하지만 아키모토 의원의 체포 이후 IR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거세지면서 2025년께 문을 연다는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올 1월 IR 인정기준을 확정하고 2월부터 각 지방자치단체가 IR 사업자를 선정하면 내년 여름 이후 최대 3곳의 IR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첫단추인 IR 인정기준조차 7개월이 지나도록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IR 스케쥴과 관련해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진행해도 지옥, 철회해도 지옥"

지난 7월 아베 내각이 채택한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에서도 IR과 관련한 내용이 삭제되는 등 일본 정부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났다. 경제재정운영 기본방침은 이듬해 국가 예산편성의 큰 틀이다. 지난해 기본방침에는 IR이 지방경제부흥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설로 명시돼 있었다. IR 정책이 표류하는 사이 홋카이도와 지바 등 유치 계획을 보류하는 지역도 나왔다.

IR 유치계획이 삐걱되면 '외국인 관광객 6000만명 유치'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일본 언론들의 공통된 우려다. 일본은 올해 외국인 관광객 40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도쿄올림픽의 연기와 코로나19로 인해 목표 달성은 커녕 관광산업이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4~6월까지 일본을 찾은 외국인의 수는 월 평균 1700명으로 3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99.9% 줄었다.

아베 총리는 지난 6월9일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코로나19 수습 후 관광객은 다시 회복될 것"이라며 "IR 또한 관광선진국의 실현을 뒷받침하는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IR이 당초 예상한 집객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총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 간부는 "IR의 깃발을 내리면 정부가 흔들렸다고 비판을 받을 것"이라며 "진행해도 지옥, 철회해도 지옥"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