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이 10일(현지시간) 승차호출 서비스업체 우버와 리프트에 자신의 자동차로 영업하는 운전기사들을 개인사업자(프리랜서)가 아닌 직원으로 처우하라고 명령했다.

우버 같은 플랫폼 사업자와 이 플랫폼을 활용하는 프리랜서 근로자가 형성하는 ‘긱이코노미’는 높은 유연성에 기반해 다수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근로 형태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공유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와중에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법적 지위 논란까지 겹쳐 긱이코노미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사는 사실상 직원" vs "기사들이 독립해서 일하기 원해"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고등법원은 이날 우버와 리프트에 주내 기사들과 고용계약을 맺으라는 예비명령을 내렸다. 예비명령은 항소 등이 제기되지 않을 경우 10일 뒤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낸다.

이번 소송은 지난 5월 캘리포니아주와 주내 3대 도시인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검찰이 지난 5월 제기한 사건이다. 주 검찰은 이 기업들이 사실상 직원인 기사에게 최저임금이나 유급 휴가,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번 명령을 내리면서 "기사들이 직원으로서 안정된 처우를 받지 못하면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우버와 리프트의 운전기사가 수천명이어서 너무 많다는 이유로 직접 고용을 회피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업체들의 매출이 사상 최저로 줄어든 지금이 기사들에게 역효과를 내지 않으면서 기업들이 캘리포니아의 법을 준수하도록 사업 관행을 바꿀 가장 좋은 시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버와 리프트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우버는 "다수의 기사가 독립적으로 일하기 원한다"며 "캘리포니아 주민 300만명 이상이 실직한 현재 지도자들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집중해야지 산업 전체를 문 닫으려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리프트 측은 "이 문제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에 의해 최종 결정될 것이며, 유권자들이 기사의 편을 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우버 기사와 같은 개인사업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긱이코노미 보호법'에 대한 찬반 주민투표를 오는 11월 실시할 예정이다.

긱이코노미 보호법의 주요 내용은 ①근무시간을 개인사업자가 정할 수 있을 것 ②기업의 핵심 업무가 아닐 것 ③회사와 독립한 업무를 수행할 것 등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프리랜서계약을 할 수 있으며, 한 가지라도 저촉되면 고용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냐 근로자 보호냐

‘긱(gig)’은 공연장에서 임시로 연주하는 연주자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근로자 또는 개인사업자’라는 의미로 쓰인다. 자신의 차를 우버나 리프트 등의 플랫폼에 등록하고, 이 플랫폼을 통해 요청한 고객에게 이동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긱의 근로자성을 두고 미국 등 각국에서 논란이 지속돼 왔다. 캘리포니아 노동위원회는 2015년 우버에 기사 직접 고용을 명령했다. 우버가 이를 거부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2018년 우버 패소로 최종 판결했다. 캘리포니아 의회가 이 판결에 근거해 제정한 긱이코노미 보호법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미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우버와 리프트 기사를 직원이 아닌 독립사업자로 봐야 한다고 심판했다. NLRB는 긱이코노미의 일자리 창출과 소비자 후생 증가 측면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버는 지난해 12월 긱이코노미 보호법에 대한 위헌 소송도 낸 상태다.

한편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긱이코노미 종사자들을 위한 공동 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프리랜서와 직원이라는 이분법 체계에서 벗어난 '제3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코스로샤히 CEO는 플랫폼 기업들이 공동으로 수당 펀드를 조성하도록 법제화하고, 이 펀드 자금을 긱 종사자의 근로시간에 기초해 의료보험이나 유급 휴가비 등에 쓰자고 했다. 업체들이 공동 펀드를 조성하면 긱 종사자가 플랫폼을 옮기더라도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우버의 지난해 말 기준 본사 직원은 2만2000명이지만 전 세계에 등록된 운전기사는 300만여 명에 달한다. 리프트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본사 직원(5000명)에 비해 운전기사(200만 명)가 훨씬 많다.

운전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규제가 확산되면 기사들이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버가 이들을 모두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