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중남미 침투 경계하는 미국, 이례적으로 IDB 수장 도전장
중남미 내 찬반 갈등…멕시코·칠레·EU 등 선거 연기 목소리
미국 '깜짝 출마'로 복잡해진 IDB 총재 선거…연기 주장 잇따라
내달로 예정된 미주개발은행(IDB) 새 총재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주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도 있지만 처음으로 미국 후보가 총재 자리에 도전하면서 선거 양상이 복잡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 재무부는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IDB 총재 선거는 우리 지역에 매우 중요함에도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된 두 차례 회의가 연기돼 IDB 총재직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무부는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사회적·경제적 도전 앞에서 IDB의 역할을 규정하고 대화할 상황이 될 때까지" 총재 선거를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멕시코에 앞서 유럽연합(EU)과 칠레도 선거 연기를 주장한 바 있다.

코로나19로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전 세계 여러 행사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이들의 연기 주장에는 다른 특별한 배경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남미 출신이 맡아온 IDB 수장 자리에 올해는 미국이 이례적으로 후보를 냈다는 것이다.

1959년 설립된 미주개발은행은 중남미와 카리브해 지역 개발을 위한 은행으로, 본부는 워싱턴에 있지만 지난 60여년간 4명의 수장은 모두 중남미에서 나왔다.

중남미 출신이 총재를 맡고 미국이 부총재를 맡는 것이 IDB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지난 6월 백악관의 중남미 담당 보좌관으로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강경책을 주도해온 모리시오 클래버커론을 미주개발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미국 '깜짝 출마'로 복잡해진 IDB 총재 선거…연기 주장 잇따라
앞서 아르헨티나 좌파 정권이 후보를 낸 후 브라질 극우 정권이 자체 후보를 내겠다고 밝히는 등 중남미 주요 국가들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결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로서는 중남미 장악력을 강화해 중국의 '뒷마당 침투'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남미 내 친미 성향 국가들이 줄줄이 클래버커론을 지지하고 나서 현재로서는 사상 첫 미국인 IDB 총재 탄생이 유력한 상황이다.

그러나 IDB 수장을 중남미 밖 국가에 내주는 것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다.

자체 후보를 낸 아르헨티나가 먼저 선거 연기 가능성을 타진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9월 12일로 예정된 선거를 11월 3일 미 대선 이후 치르기 희망한다고 로이터통신은 최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 클래버커론의 입지도 약해질 것을 기대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 관계자는 로이터에 미국은 중남미 개발보다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IDB 총재에 출마한 것이라고 말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스페인 외교장관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 정부가 유례없이 IDB 후보를 낸 것을 고려할 때 선거 연기가 더 바람직하다"며 내년 3월 이후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어 안드레스 아야만드 칠레 외교장관도 6일 의회에서 "외부 요인에서 오는 긴장을 피해야 한다"며 선거 연기를 지지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선거 일정 조정을 위해서는 각국 지분율을 고려해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은 IDB 지분 30%를 차지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