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프 히티 외무장관, 임명 7개월만에 '사표'
"레바논 정부 개혁의지도 비전도 없어" 쓴소리
친이란 헤즈볼라 세력 경계 메시지도
레바논정부 홈페이지 캡쳐

레바논정부 홈페이지 캡쳐

수십년만에 최악 수준인 경제·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레바논에서 외교 수장인 외무장관이 돌연 사임했다. "이러다간 레바논이 국가로서 실패할 것"이라는 쓴소리도 내놨다.

3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나시프 히티 레바논 외무장관(사진)은 이날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뒤 별다른 언급 없이 관저를 떠났다. 지난 1월 외무장관에 임명된지 약 7개월만이다.

이날 공개된 사직서에서 히티 장관은 "나는 오직 국가를 섬길 생각으로 이번 정부에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섬겨야 할 이가 많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며 "그들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합심하지 않는다면 이 배(레바논)는 가라앉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레바논은 실패한 국가의 길을 걷고 있다"며 "구조개혁을 이루려는 의지도, 비전도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히티 장관은 별도 성명을 통해 "변화와 개혁에 큰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에선 희망이 깨졌다"고도 말했다.

히티 장관은 중동 외교계 거물 중 하나로 꼽힌다. 아랍권 22개국 연합 국제기구인 아랍연맹의 외교관을 지내기도 했다. 알자지라는 "히티 장관의 사임은 현 레바논 정부가 입은 지금껏 가장 큰 타격"이라고 지적했다.

걸프뉴스는 "히티 장관이 정부의 성과와 개혁 의지 부족 등에 염증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총리 등과 외교 문제를 놓고도 이견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디아브 총리는 지난달 프랑스 외무장관이 레바논을 방문한 당시 비판 트윗을 올렸다가 지운 적이 있다.

레바논 총리실에 따르면 디아브 총리는 현장에서 히티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정부가 후임자를 지명할 때까지 도미아노스 카타르 현 행정개발부 장관이 외무장관 대행을 맡게 된다.

레바논은 수십년만에 최악 수준인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100억달러 규모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교착 상태다. 레바논은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등에 원조를 요청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앞서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정부 관료 중 고위급 인사 두 명도 자진해 물러났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사임한 두 사람 모두 "레바논의 정계·금융계 '엘리트'간 이해관계가 정부의 개혁 의지를 꺾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움직임이 이어지면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 등도 더 큰 난관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IMF나 다른 국가들이 정부 고위 관료들이 자진해 떠나는 정부를 믿고 거금을 지원하긴 어려워서다.

레바논에서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도 관건이다. 미국 등이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보니 IMF가 헤즈볼라와 친밀한 현 레바논 정부에 선뜻 지원 결정을 하기 어렵다는게 미국 CNBC 등의 지적이다.

이날 히티 장관도 사직서에서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와 친밀하다는 점을 에둘러 비판했다. 알자지라는 "히티 장관은 레바논 정부가 아랍권과의 연대를 명확히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며 "이는 헤즈볼라와 현 정부와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헤즈볼라는 비아랍권 이슬람국가인 이란을 지원한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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