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은 카리브해 섬나라들이 시민권 할인 장사에 나섰다고 CNBC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면적 617㎢, 인구 18만 명의 섬나라 세인트루시아는 지난 5월부터 1인 25만달러, 4인 가족 30만달러 상당의 투자이민을 받고 있다. 기존 1인 50만달러, 4인 가족 55만달러에서 절반 정도로 내렸다. 이 금액만큼의 5년 만기 정부 채권을 사면 3~4개월 후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취득 절차를 밟는 동안 세인트루시아에 방문하거나 체류할 필요는 없다. 채권 5년 보유 이후에는 평생 시민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할인 판매 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세인트루시아는 2015년부터 시민권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700여 명이 투자이민 제도를 활용해 이 나라의 국적을 취득했다. 세인트루시아는 소득세와 재산세, 상속세가 없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 모임인 영연방 소속 국가로, 이 나라 여권이 있으면 146개국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면적 261㎢, 인구 5만1000여 명의 세인트키츠네비스도 올 7월부터 시민권 할인에 들어갔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올해 말까지 15만달러를 기부하고 부동산 20만달러어치를 사면 시민권을 발급해 준다. 기부금 규모를 기존 19만달러에서 20%가량 내렸다. 세인트키츠네비스 정부는 이 자금을 코로나19 대응에 활용할 계획이다.

세인트키츠네비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민권 장사를 시작했다.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의 개발자 파벨 두코프가 모국인 러시아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2014년 이 나라의 시민권을 획득했다. 레스 칸 세인트키츠네비스 투자이민사업 대표는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초토화된 상황이어서 투자이민이라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면적 442㎢, 인구 9만여 명의 앤티가바부다도 지난 5월부터 투자이민 할인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희망자는 4인 가족 기준 10만달러를 내고 부동산 20만달러어치를 구매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기부금이 12만5000달러에서 20% 내렸다.

카리브해의 소국들은 그동안 소득세 등이 없다는 점을 내세워 미국과 유럽의 부자를 상대로 시민권 장사를 해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를 비롯한 각종 스트레스에 지친 대중도 한적한 카리브해에서의 생활에 관심을 보인다고 CNBC는 전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