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김현석 뉴욕 특파원
'50년 반도체 제국' 인텔은 어쩌다 '절망 회로'에 갇혔나

“우리는 다른 기업의 공정 기술을 사용할 필요가 있고, 그런 비상 계획을 세울 정도까지 준비할 것이다.”

밥 스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 열린 2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텔 주가는 24일 폭락했다. 종가는 16.24% 떨어진 주당 50.59달러였다. 경쟁사인 AMD 주가는 16.5% 폭등해 69.40달러로 올랐다.

스완 CEO의 언급은 1968년 설립 이후 지난 52년간 자체적으로 칩을 설계하고 생산해온 인텔이 ‘제조를 포기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 넘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인텔은 이날 삼성전자와 TSMC가 생산 중인 7나노미터(㎚) 공정 기술을 올해 말까지도 개발하지 못할 것이라고 시인했다. 그 대안이 제조 포기인 것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반도체업계의 ‘제왕’이었다. 창업자 고든 무어의 ‘무어의 법칙’(반도체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 증가한다)을 앞세워 메모리부터 중앙처리장치(CPU), 서버칩까지 모든 칩의 업계 표준을 제정해왔다. 그러나 이젠 몇 년 전 부도설까지 나돌던 AMD에도 위협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너무 오래 업계를 지배하면서 자만에 빠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인텔은 1991년 ‘인텔 인사이드’를 붙여 PC CPU 시장을 평정했다. PC에 들어가는 CPU는 성능이 뛰어나기만 하면 됐다. 2007년 애플 아이폰이 나온 뒤 이런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스마트폰용 CPU, 즉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좋은 성능은 물론이고 전력 소모가 적어야 했다. 배터리가 빨리 방전되면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PC CPU에선 힘을 못 쓰던 퀄컴과 삼성전자는 AP 시장에선 승승장구했다. 인텔은 스마트폰에 밀려 PC 시장이 줄어들자 AP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전력 소모를 쉽게 잡진 못했다. 인텔은 AP사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후 인텔에선 CEO가 여러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구조조정을 했다.

‘헝그리정신’이 없는 인텔의 시도는 헛돌기 일쑤였다. 최근엔 공정기술마저 뒤처졌고, 큰 고객인 애플마저 지난달 맥북에 인텔 CPU가 아니라 자체 칩을 넣겠다고 발표했다.

인텔뿐이 아니다. 기자가 뉴욕에 온 2017년 이후 과거의 영광을 가진 여러 기업이 몰락했다. 과거 제너럴모터스(GM)가 그랬고 최근엔 제너럴일렉트릭(GE), 보잉이 그렇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저자 짐 콜린스는 ‘성공에서 잉태된 자만이야말로 망조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곳곳에서 리더들이 마음에 담아둬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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