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종교간 균형을 위해 내부 종교행위가 일절 금지됐던 터키 이스탄불의 문화유적 아야소피아(성소피아)에서 86년만에 이슬람식 예배가 열렸다.

24일(현지시간) 터키 아나돌루통신에 따르면 이날 아야소피아에선 이슬람식 금요일 예배가 열렸다. 이날 예배엔 타이이프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여러 고위 관리들을 비롯해 터키 전역에서 몰린 이슬람 신도들이 참석했다. 아나돌루통신은 "사회 각계각층의 내빈들이 모스크 개장 기념식에 총출동했다"고 보도했다.

아야소피아 건물 밖 광장에도 예배 장소가 마련됐다.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로 아야소피아 내부 예배를 생중계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터키 보건당국은 이번 행사에 보건요원 약 700명, 구급차 101대, 구급용 헬리콥터 한 대를 동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아야소피아 내부 예배 가장 앞 열에서 쿠란을 낭독했다. 그는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스크였던 아야소피아가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라며 "이는 제 2의 정복"이라고 말했다.

터키 당국은 이날 이슬람 금요예배를 치르는 동안 아야소피아 안에 있는 성모 마리아와 대천사 가브리엘을 묘사한 벽화와 장식 등을 천으로 가렸다. 인물이나 동물의 그림·장식을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을 따라서다.

아야소피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두 종교의 역사가 혼재된 것으로 유명하다. 동로마제국이 537년 대성당으로 지었다. 537년부터 1054년까지는 기독교 성당으로, 1054년부터 1204년까지 그리스정교 성당으로 쓰였다. 이후 1204년부터 1261년 가톨릭 성당이 됐다가 그 뒤 약 200여년간은 다시 그리스정교 성당이 됐다.

아야소피아는 1453년 오스만투르크가 이스탄불을 차지하면서 모스크로 개조됐다. 1935년엔 터키 정부가 종교간 분쟁을 지양하자며 아야소피아를 종교 건물이 아니라 박물관으로 지정해 관광 명소가 됐다. 아야소피아는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엔 일대 이스탄불 역사지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 금요예배는 아야소피아에서 86년만에 공식적으로 열린 예배 행사다. 그간엔 내부 종교행위가 일절 금지됐다. 터키 당국이 아야소피아는 특정 종교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방침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아야소피아 박물관 지위를 박탈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같은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아야소피아를 터키 종교청이 관리하는 모스크로 바꾸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두고 세계 곳곳에선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아야소피아가 특정 종교만을 위한 시설로 개조되면 그간 유지해온 '종교 균형'이 깨진다는 지적이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가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지정한 것은 주권 행사 차원의 일"이라며 "이를 비판하는 것은 터키의 주권을 공격하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라고 맞섰다.


일각에선 최근 인기가 떨어진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 민족주의를 내세워 지지층을 모으기 위해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아야소피아 인근에서도 터키 국기를 흔들며 모스크 개장을 축하하는 이들이 여럿 나왔다. 알자지라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진한 코로나19 대응, 경제 위기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졌다"며 "인기를 모으기 위해 이슬람주의와 터키 민족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고 보도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