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에 모인 유럽연합(EU) 정상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관련 논의에서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코로나19 기금 중 각국이 향후 갚을 필요가 없는 보조금을 얼마나 많이 배정할 것인지가 주요 논쟁거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밤늦게 비공식 협상을 벌이다 논쟁 끝에 뤼터 총리만 남겨놓고 돌연 자리를 떴다.

각 정상들은 이날 밤 11시까지 이어진 공식 회의에서 합의가 결렬된 뒤 비공식 대화에 돌입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뤼터 총리는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들(메르켈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은 투덜거리며 나갔다"며 "내일 타협에 이를 수도 있지만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EU 각국 정상들은 지난 17일 코로나19 회복기금 등을 논의하기 위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첫 대면 회의를 열었다.

EU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EU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존 예산과는 별도로 경제회생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금 규모와 형태 등을 놓고 각국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앞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제안한 7500억유로(약 1030조원) 규모로 경제회복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이 7500억유로는 너무 많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코로나19 경제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최소 4000억유로 규모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상 보조금도 일정 규모 지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면 네덜란드 등은 그보다 훨씬 적은 규모 지원금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

기금 형식도 논쟁거리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등 4개국은 무상 보조금 대신 장기저리대출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EU 예산에 납부하는 금액이 EU로부터 지원받는 돈보다 더 많은 순납부국이다. 이번 지원금을 조성해 EU가 대규모 공동 채무를 지게 되면 그만큼 자국 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남유럽 국가들은 무상 보조금 형식을 원하고 있다. 코로나19 피해 규모에 따라 기금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협상이 길어지면서 각국 정상간 이견 골도 깊어지고 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19일 성명을 통해 "유럽이 '재정적 매파'들에게 협박당하고 있다"고 네덜란드 등을 작심 비판했다.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아예 네덜란드를 빼놓고 EU 26개국간 지원금 협정을 추진하기를 제안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 외교 관계자는 "설득력 없는 일"이라고 이를 일축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각 정상들은 월요일 금융 시장이 개장하기 전에 이견을 해소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메르켈 총리는 19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논의 3일째에 돌입한다"며 "오늘 별다른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