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별대표 2주년 한달여 앞으로…北협상상대 '안갯속'
[특파원 시선] 스티븐 비건의 카운터파트 찾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 외교가 안팎에서 'a man of integrity'로 불린다.

'integrity'는 완전히 일치하는 우리 말을 찾기 쉽지 않은 표현 중 하나인데 '진정성 있는 사람' 정도로 해둬도 괜찮을 것 같다.

온화하고 겸손한 성품으로 남의 의견을 경청, 두루 신망이 높고 적이 없는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에 갈 때마다 못 말리는 '닭한마리 사랑'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한다.

방한의 숨은 목적은 '소울푸드'인 닭한마리를 먹기 위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지난 7∼9일 방한 중에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오찬을 닭한마리로 했다.

비건 부장관은 내달 23일로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지 2년이 된다.

그는 지난 연말 국무부 이인자인 부장관으로 승진한 이후에도 대북 특별대표 직함을 유지하며 대북 협상에 대한 애착을 보여왔다.

하지만 내일 갑자기 북한과 협상이 재개된다고 하면 누가 카운터파트(협상상대)로 테이블 맞은편에 등장할지 그는 자신하지 못한다.

그만큼 장기 표류하는 북미 협상의 교착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그가 지난 8일 약식 브리핑 및 사전배포한 발언을 통해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향해 예상치 못한 '돌직구'를 날리며 카운터파트 관련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협상할 준비가 됐고 권한이 있는' 카운터파트를 임명하면 북한은 그 순간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됐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단어 한단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부장관 승진 후 자신의 카운터파트 격으로 여겨져온 최 제1부상을 이례적으로 비판하면서 나온 발언이라, 듣기에 따라 '제3의 인물'을 카운터파트로 요구하는 듯한 뉘앙스로도 읽힐 소지가 있어 보였다.

다만 최 제1부상은 비건 부장관 본인이 지난해 11월 인준 청문회에서 자신의 카운터파트 적임자로 직접 제안한 인물이다.

자신보다 앞서 승진한 최 제1부상을 '권한이 주어진 협상가'로 평하며 실무협상 체급 격상을 요구했던 것이다.

지난 2년간 비건 부장관의 북측 카운터파트는 북미 협상의 부침에 따라 최 제1부상(당시 부상)→김혁철 전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등으로 바뀌며 수난사를 겪었다.

이후 북한은 비건 부장관이 요구한 '최선희 카운터파트' 카드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 기간에도 비공개 협의 자리에서 "도대체 내 카운트파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북측이 비건 부장관의 카운터파트를 공식 통보한다면 이는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노딜' 이후 멈춰선 비핵화 실무협상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비건 부장관의 카운터파트 임명 촉구 발언은 공교롭게 그의 방한 기간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3차 북미정상회담 띄우기와 맞물려서도 관심을 끌었다.

시점적으로 비건 부장관의 '준비되고 권한있는 카운터파트' 요구가 있은 뒤인 지난 10일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미 스피커로 전면에 등장, 트럼프 대통령 등의 정상회담 언급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힌 것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 격과 급이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백두혈통'인 김 제1부부장을 비건 부장관의 카운터파트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에 김 제1부부장이 연내 북미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일단 '일축'함에 따라 극적 계기가 없는 한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에 실무협상 대표 명단을 통보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더욱이 불확실한 미 대선 상황이 북측을 한층 더 관망 모드에 놓이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비건 부장관은 북측의 명단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북측 카운터파트와 닭한마리를 같이 먹으며 협상에 속도를 내는 장면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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