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처리장치(GPU)에 특화한 반도체업체 엔비디아가 시가총액에서 전통의 강자 인텔을 추월하고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반도체기업으로 도약했다. 그래픽 구현 기술을 빅데이터와 자율주행 등에 확대 적용하면서 강력한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게임과 기업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엔비디아, 인텔 눌렀다…美 반도체 시총 1위 등극

미국 1위로 올라선 엔비디아

엔비디아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3.4% 오른 408.6달러로 마감했다. 1999년 1월 나스닥 상장 이후 최고가다. 시가총액은 2513억달러(약 300조원)로 불어났다. 인텔은 0.5% 상승한 58.6달러, 시총 2481억달러로 장을 마쳤다. 시총에서 엔비디아가 32억달러 차이로 인텔을 앞섰다.

엔비디아는 대만 출신 젠슨 황이 1993년 미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했다. 기존 주력 제품은 PC에서 영상 작업을 처리하는 GPU다. 예전에는 중앙처리장치(CPU)가 영상도 담당했으나 그래픽 비중이 점점 높아지면서 GPU가 필수 부품이 됐다.

엔비디아는 단순한 작업 여러 개를 동시에 처리하는 GPU의 특징을 살려 사업 영역을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주도 기술로 확장하고 있다. 테슬라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등 자율주행 선도 기업들이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의 복잡한 명령을 처리하는 것은 CPU가 빠르지만, 단순한 계산 수십 개를 한꺼번에 푸는 것은 병렬 구조의 GPU가 신속하다. 이런 특성은 비교적 단순 작업 여러 가지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자율주행과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연관성을 찾아내는 빅데이터 처리에 적합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엔비디아가 더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게임기와 PC에 들어가는 GPU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기업들이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사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데이터부문 매출은 지난 1분기 11억4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4.2% 늘었다.

흔들리는 전통의 강호 인텔

엔비디아의 주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2016년 초부터 현재까지 4년여 동안 열 배 이상 뛰었다. 인텔의 주가는 같은 기간 70%가량 올랐다. 올 들어선 엔비디아가 68% 상승하는 동안 인텔은 오히려 3% 떨어졌다.

회사 전체 실적에선 인텔이 여전히 엔비디아를 압도한다. 월스트리트에서 예상하는 올해 매출은 인텔이 전년 대비 2.5% 증가한 738억달러(약 88조원)다. 엔비디아의 매출 전망치는 146억달러(약 17조원)로 5분의 1 수준이다.

시장이 주목하는 건 성장성이다. 엔비디아의 매출은 2016년 69억달러에서 지난해 109억달러로 3년 만에 58% 불어났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19억달러에서 28억달러로 뛰었다. 엔비디아의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34% 증가할 전망이다.

인텔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매출은 2016년 165억달러에서 지난해 198억달러로, 영업이익은 46억달러에서 70억달러로 늘어났다. PC와 서버 부문에선 여전히 글로벌 1위다. 성장성에선 물음표가 뒤따르고 있다. 인텔은 성능이 뛰어난 대신 전력 소비가 많은 기존 칩에 안주하다가 전력 효율이 핵심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을 놓친 전력이 있다. 최근에는 ‘15년 동맹’ 애플이 맥북 등 PC용 칩에서 인텔에 결별을 선언하면서 CPU 강자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제조 부문에선 10㎚ 이하 초미세공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생산을 맡기는 상황이다. 엔비디아가 칩 설계만 하고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팹리스기업인 데 비해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자체적으로 한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