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수소경제’ 육성에 속속 나서고 있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는 경제산업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수소경제는 친환경·저탄소 기조에 대응한 에너지 대안 사업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소경제 띄워 경기부양"…EU, 10년간 70배로 키운다

EU “수소시장 10년간 70배 키운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유럽 수소전략을 발표했다. EU 수소경제 규모를 올해 기준 20억유로(약 2조6970억원)에서 2030년까지 1400억유로(약 188조8140억원)로 키우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일자리 14만 개를 창출할 계획이다. EU집행부는 이날 수소에너지 관련 투자가 2050년까지 최대 4700억유로(약 633조7950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 집행위는 이를 위해 역내 각국과 에너지·자동차·화학·운송 등 각 분야 기업 총 200개 이상이 참여하는 민관 ‘수소연합’을 결성하기로 했다. EU 예산에선 수소 이니셔티브 재원을 기존의 두 배인 13억유로(약 1조7530억원)로 늘린다. EU 혁신기금을 통해 관련 사업에 약 300억유로(약 40조4600억원)를 쓰고, 유럽투자은행 특별기금을 통해선 대출 등 매년 100억유로(약 13조4870억원)를 지원한다.

유럽·미국·일본 등 돈 쏟아부어

최근 주요국의 수소경제 투자가 붐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지난달 14일 국가 수소경제 전략을 발표했다. 약 90억유로(약 12조원)를 들여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수소를 운송·철강·화학 등 주요 산업 에너지원으로 쓰겠다는 게 골자다. 향후 3년간 운송용 수소탱크 인프라 개발을 위해 34억유로(약 4조5850억원)를 투입하고, 항공기 수소 연료 개발에 11억유로(약 1조4840억원)를 지원한다. 노르웨이도 지난달 수소에너지 육성을 국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발표했다.

미국은 매년 수억달러 규모의 공공·민간투자를 벌이고 있다. 2002년부터 수소 인프라 로드맵인 ‘2030 수소경제 이행비전’을 발표해 대거 투자 사업을 벌였다. 미국 연료전지 및 수소협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수소에너지 시장 규모를 연간 1400억달러로 키워 일자리 70만 개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중동에선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우디판 실리콘밸리’로 조성하는 신도시 네옴에 수소 생산시설을 들이기로 했다. 일본은 올해 수소경제 육성을 위해 809억엔(약 899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2030년까지 발전용 수소를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경제부양·일자리 창출 수단

각국이 수소경제에 적극 나서는 것은 친환경 인프라 투자를 통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부양하면서 저탄소 명분도 함께 잡을 수 있어서다. 카드리 심슨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경제는 코로나19에서 회복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유럽 사회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수소경제 개발은 이 두 가지를 함께 만족시키는 연결고리”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0% 줄이고 2050년엔 탄소 배출 ‘제로’를 이루는 게 목표다.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라이언 한나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 연구원은 “수소경제는 장기적으로 구경제 산업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수소경제는 아직 초기 단계다. 각국이 투자에 적극 뛰어드는 이유다. 향후 몇 년간 투자가 수십년간 주도권을 가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EU 집행위에 따르면 EU는 국제 수소시장을 창설해 유로화를 수소거래 벤치마크로 쓰자고 주장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유로화 가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설명이다. 유럽 내 수소경제 관련 기업 모임인 수소유럽의 호르고 차치마르카키스 사무총장은 “에너지산업은 초기 선점이 중요하다”며 “빨리 나설수록 시장의 중심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