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기업들이 엄청난 현금을 마련해놓고 쓰지도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영업뿐 아니라 생존까지 불확실해지면서 ‘믿을 건 현금밖에 없다’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현금 방파제 쌓아라"…美기업들 빚내 확보
2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부채 조달,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용을 절감하는 등 현금을 아껴 쓰고 있다. 맥도날드는 1분기 48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1분기 말 보유현금을 45억달러로 늘렸다. 총부채는 10% 증가했다. 인텔도 104억달러어치 채권을 찍어 총부채는 35% 증가했지만 1분기 말 보유현금은 77억달러가 됐다.

펩시코는 1분기 76억달러를 빌려 현금 규모를 두 배로 늘렸고, 힐튼월드와이드홀딩스는 1분기 호텔마일리지를 매각해 10억달러를 확보하고 은행에서 15억달러를 빌렸다. 또 지난 4월 마일리지 추가 매각과 채권 발행으로 20억달러를 더 모았다. 로버트 맥마흔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달 초 투자자들에게 “경기 혹은 매출 회복이 어떻게 진행될지 이해하기 위해 몇 달 더 지켜보고 싶다”며 “유동성은 여전히 꼭 보유해야 할 자산”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는 수치로 확인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S&P500 기업의 현금과 단기투자자산 규모는 1분기에 13.9%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3.4%), 4분기(4.1%) 증가율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부채도 늘었다. S&P500 기업 중 금융사를 제외한 기업의 절반가량이 지난 1분기 총부채가 3.38% 증가했다. 그 직전 세 분기 총부채 증가율의 중간값은 0.20%에 그쳤다.

현금 확보를 위해 사업을 줄이거나 자산을 매각하는 기업도 많다. 크루즈업체 카니발은 배 6척을 매물로 내놨다. 주택건축업체 레나는 토지 매입을 일시 중단했다. 기업들은 동시에 출장, 잠재 고객 발굴, 콘퍼런스 참석과 같은 예산 지출도 보류하고 있다.

해외에서 번 돈을 본사로 가져오는 곳도 급증하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기업들은 국외 수익 1240억달러를 미국으로 들여왔다. 같은 기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1150억달러)보다 더 많다.

현금은 경제위기 때 기업을 보호해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며, 경기회복기엔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성장 연료가 된다. 리 핀코위츠 조지타운대 재무학 교수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전염병과 확산되는 시위, 정치적 혼란이 두려움을 자극해 현금을 비축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