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싱가포르 회담 반년 전에 이미 한미훈련 취소할 뻔"
"김정은 러브레터에 '당장 백악관 초대하라'…폼페이오는 '성공확률 제로'"
"트럼프, 한국의 제재이행 확인 전까지 한미무역협정 지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철저한 대북제재 이행을 확인하기 전까지 일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합의문 서명을 지연시켰다는 주장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이미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시킬 뻔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브레터'에 당장 백악관에 초대하라고 서둘렀다는 이야기도 공개됐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간될 예정인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외교를 둘러싼 여러 비화를 소개했다.

◇ "트럼프, 무역협정을 협상 지렛대로 생각…한국과 어젠다 달라"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2018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통일 어젠다와 우리의 비핵화 목표 사이의 차이를 재차 목격했다"며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서울(한국 정부)이 여전히 타이트하게 대북 제재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때까지 한미무역협정에 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적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이 약간 지연되는 동안 한미 무역협정을 협상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한미 FTA 개정 협정문은 2018년 9월24일 최종 서명됐다.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문재인 정부 사이의 분열이 커질 가능성을 부각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조치를 보면서 어떠한 정부라도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우리와 다른 어젠다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것이 비핵화보다는 남북관계를 강조하는 의미였을 것일 수 있다"고 적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중간선거 전 북한에 대한 좋은 뉴스가 나오기를 원했다면서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가 미국의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한국이 남북통일 추진 속도를 늦추기를 원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 "트럼프, 싱가포르 회담 반년 전에 이미 한미훈련 취소할 뻔"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른바 '워게임 중단'을 선언하기 반년 전에 이미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할 뻔했다는 뒷얘기도 폭로됐다.

볼턴 전 보좌관은 저서에서 워게임 중단 선언에 대한 고위 당국자들의 우려를 전하면서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이 "6개월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의 항의 때문에 그 훈련들을 거의 취소할 뻔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당시 매티스 장관을 포함한 국방부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사실상 반기를 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등장한다.

싱가포르에서 에어포스원을 타고 귀국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를 시청하다가 익명의 국방부 대변인을 인용한 '훈련 계획은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된다'는 보도를 보고 볼턴 전 보좌관에게 '매티스에게 전화해 모든 것을 멈추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매티스 전 장관 역시 언론에 성명을 내려고 했으나, 오히려 트럼프가 더 광범위한 훈련 중단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염려를 고려해 이를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매티스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일주일가량 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전 보좌관과의 조찬 회동에서 '어떠한 훈련이 취소되더라도 준비태세가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트럼프, 한국의 제재이행 확인 전까지 한미무역협정 지연"
◇ "트럼프, 김정은 러브레터에 '백악관 초대해야'…뉴욕 대안은 거절"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비핵화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에서 '러브레터'가 날아오자 트럼프 대통령이 서둘러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대하려 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11월 중간선거 전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 속에서 과도한 양보를 할 수 있다고 보고 11월 전에는 만남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그를 백악관으로 초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이에 볼턴 전 보좌관이 9월 유엔총회 시작 무렵 뉴욕에서 만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자 "아니다.

그때는 진행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다"라며 백악관 초대를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트위터로 "당신을 곧 보기를 고대한다"고 적은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참모들이 올린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초안에 서명했고, 폼페이오 장관을 먼저 평양에 파견하자는 볼턴 전 보좌관 등의 제안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7월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이 빈손으로 귀국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사인한 엘튼 존의 '로켓맨' CD를 전달했는지 물어봤다고 회고록에 적혔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를 두고 "김정은에게 그 CD를 주는 일이 (싱가포르 정상회담부터) 여러 달 동안 높은 우선순위였던 셈"이라고 촌평했다.

◇ "폼페이오, 평양방문서 크게 실망…'성공 가능성 제로'"
1차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해 비핵화 협상을 직접 진두지휘하던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대해 느꼈던 실망감과 비관적인 견해도 회고록에 담겼다.

2018년 7월 평양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은 "거의 아무런 진전을 만들어낼 수 없어서 엄청나게 실망스럽다"고 전화로 보고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워싱턴DC로 돌아온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은 비핵화 이전에 안전 보장을 원한다"고 보고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이런 '신뢰 구축'은 개똥같은 소리"라며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폼페이오 장관은 "이건 제재를 약화하려는 노력일 뿐이며 전형적인 지연 전술"이라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7월 말 국가안보회의(NSC) 장관급 회의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중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며 "(비핵화 외교는) 성공할 가능성이 제로"라고 언급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밝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 들뜬 상태에서도 김 위원장이 회담 도중 북한 관리 중 한 명에게 화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가리키면서 그가 "포악한 면을 가졌다"며 "그는 변덕스러울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한국의 제재이행 확인 전까지 한미무역협정 지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