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혁신금융의 상징으로 통한 다국적 전자결제서비스 기업 와이어카드의 마커스 브라운 최고경영자(CEO·사진)가 사임했다. 회계감사에서 19억 유로(약 2조6000억원) 규모 현금의 소재가 불명확한 것으로 드러난지 하루만이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와이어카드는 이날 브라운 CEO가 사임하고 제임스 프리스 최고준법감시책임자(CCO)가 CEO 대행을 맡기로 내정했다고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프리스 CCO는 독일 증권거래소 도이치뵈르제에서 일하다 지난 18일 와이어카드에 입사한지 하루만에 CEO 대행을 맡게 됐다.

와이어카드는 이날 성명에서 "회계감사를 속이고 마치 (없는) 현금이 있는 것처럼 오도하려는 회계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브라운 CEO는 사임 전날인 18일에도 주요 외신들에 "19억 유로는 믿을만한 은행이 보유하고 있으며 신탁관리인의 관리를 받고 있다"며 "부정 거래가 있었는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각 은행은 와이어카드가 언급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확인증 발급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어카드는 이날 "브라운 CEO의 사임은 감독 이사회와 상호 동의하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와이어카드는 지난 18일엔 얀 마살렉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정직시켰다.

와이어카드는 지난해부터 회계부정 의혹을 받았다. 18일 와이어카드 담당 회계감사법인인 언스트앤영(EY)이 와이어카드 감사 결과 와이어카드가 계좌에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현금 19억유로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의혹이 크게 확산됐다. 사라진 19억유로는 전체 대차대조표의 약 4분의1 규모에 달한다.

회계부정 문제가 드러나면서 와이어카드 주가는 이틀간 약 80% 폭락했다. 18일에만 주가가 62.82% 폭락했고 19일엔 오전에만 30% 이상 주가가 추가로 내렸다. 와이어카드 주식은 지난 17일 주당 103.62유로에 장을 마쳤지만 19일엔 26달러 선에 거래되고 있다. WSJ에 따르면 18일 날아간 와이어카드 시가총액은 90억 달러에 달한다.
와이어카드 CEO 사임…"2.6조원 행방 묘연" 의혹 하루만
와이어카드는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두고 세계 26개국에서 모바일·온라인 결제와 신용카드 발급 서비스를 운영한다. 와이어카드가 발표한 재무제표상 매출은 2004년부터 2018년까지 50배 뛰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배 폭증했다. 2018년 한때는 시가총액이 독일의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각종 회계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작년엔 와이어카드가 실적을 조작해 회계감사인과 금융감독 당국을 속여왔다는 내부고발이 나왔다.

와이어카드는 당초 지난 18일 작년 실적 발표를 할 예정이었으나 회계부정 문제가 제기되면서 계획을 취소했다. 19일까지 실적을 발표하지 못하면 은행들은 와이어카드에 대출해줬던 20억유로를 즉각 회수할 권리를 갖게 된다. 와이어카드의 지분을 갖고 있는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와이어카드를 상대로 한 법적 조치도 검토 중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