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선거유세를 하지 못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노예해방일인 오는 19일부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적 참사가 발생한 곳을 시작으로 유세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흑인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9일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하지 못했던 유세를 3개월 만에 재개한다.

6월 19일은 노예해방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고 2년여가 지나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에 마지막으로 해방의 소식이 전해진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의 흑인에겐 노예제의 굴레를 벗고 자유를 품에 안은 뜻깊은 날이자 또 하나의 독립기념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장소로 택한 털사는 1921년 백인들이 흑인 동네를 상대로 학살을 저지른 곳이다. 당시 죽은 흑인들은 300명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적 참사라 흑인들에겐 상처가 깊다.

이에 야권에선 흑인 의원들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나왔다. 인종차별을 노골적으로 부추겨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자, 환영받기 어려운 날짜이자 장소에서 인종주의를 동원해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하원 흑인의원 그룹을 이끄는 캐런 배스 민주당 의원은 11일 트위터에 "털사 인종 폭동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결례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무고한 흑인 주민에게 만행을 저지른 곳인데 흑인에 적대적이고 억압적 어젠더를 추진해온 대통령이 이 장소를 택했다"며 "게다가 그는 노예해방일을 택했다. 말도 안되고 흑인을 또 모욕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조 케네디 민주당 하원의원 역시 "99년 전 백인 무리가 털사의 흑인 수백명을 학살했다. 내 생애 가장 인종차별적 대통령은 노예해방일에 털사에 가는 메시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했고,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은 "이건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윙크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인종차별 기조를 통한 백인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백인 경찰에 의해 질식사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시작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에 확산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법질서 확립을 주장하고 있다. 또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육군 기지명 변경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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