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홍콩발(發) 자금 유출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계기로 가속화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0일 보도했다. 홍콩에 본부를 둔 헤지펀드에 이어 중국 부자들까지 홍콩을 떠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SCMP에 따르면 중국 부유층은 그동안 자본 유출입이 자유롭고 인터넷 검열이 없으며 영국식 사법제도하에 법치가 보장되는 장점 등을 보고 홍콩에 투자해 왔다. 중국 본토에선 해외 주식·부동산·금융상품 직접 투자가 금지돼 있다. 본토 부자 상당수가 홍콩에서 계좌를 개설해 금융상품, 해외 주식, 부동산 등을 거래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설명이다.

홍콩 보험업감독관리국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 신규 보험 상품의 25%는 중국 본토 주민이 샀다. 홍콩 주식시장에 투자한 중국 본토 주민은 2018년 영국인 수를 넘어 외지인 가운데 최대 규모가 됐다. 하지만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 강행으로 정치적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대우를 박탈하는 절차에 들어가면서 중국 투자자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의 투자자인 류안량은 SCMP에 “홍콩이 특별지위를 잃으면 홍콩에 투자한 자산이 얼마나 오랫동안 안전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투자자는 “홍콩달러를 미국 달러로 환전하거나 홍콩 부동산을 팔아 그 돈으로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등의 비상조치에 들어간 자산가가 많다”고 전했다.

중국의 한 경제전문가는 “홍콩에 투자한 중국인들이 겉으로는 홍콩 반정부 시위에 반대하고 홍콩 보안법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자산을 안전한 곳으로 재배분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표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에서 탈출하는 자금의 이동처로는 같은 화교문화권인 싱가포르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에 따르면 싱가포르에 예치된 외화예금은 4월 말 기준 269억싱가포르달러(약 23조원)로 1년 전보다 네 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홍콩의 외화예금은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딕샤 게라 블룸버그인텔리전스 금융애널리스트는 “중국 부자들이 홍콩을 통해 보유하고 있던 해외 자산을 대거 정리하고 그 자금을 싱가포르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싱가포르는 스위스에 버금가는 금융거래 비밀 보호, 외국 소득에 대한 면세 등의 정책으로 중국 외 지역의 해외 부호들도 대거 유치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8일 미국의 특별지위 박탈로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의 지위를 잃을 것으로 우려하는 상당수 헤지펀드가 싱가포르 등으로 이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 4월까지 홍콩에서 빠져나간 헤지펀드 자금은 310억달러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홍콩에 있는 헤지펀드는 약 420개(운용자금 910억달러)로 지역 2위인 싱가포르보다 80개가량 많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