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LA폭동 촉발한 로드니 킹
음주운전 들통날까 경찰 제지 불응
강도였던 플로이드도 위폐 사용 혐의
“경찰 사이 누적돼온 선입견이 영향”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관련 시위가 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관련 시위가 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흑인 조지 플로이드 비판 영상을 리트윗해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리트윗한 글은 흑인 여성이자 보수주의 운동가인 캔디스 오웬스가 플로이드를 깎아 내리는 내용이 중심이다.

오웬스는 영상에서 “(범법자인) 플로이드가 순교자가 됐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며 “단순히 경찰이 가혹 행위를 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에 플로이드가 했던 (범법)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니란 뜻은 아니다”고 했다. 이어 “플로이드는 매우 긴 범죄 기록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 어느새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돼 버렸다”고 한탄했다.

트럼프는 이날 이 영상을 포함해 총 200개의 트윗을 띄웠다. 대통령의 하루 최다 기록이다. 2015년 1월 5일 세웠던 종전 기록(161개)도 경신했다. 트럼프의 트윗 팔로어는 현재 8180만명이다.

플로이드 과거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흑인 플로이드는 순교자나 의인이 아니다”는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플로이드가 사망 전 거주했던 미네소타주 미이애폴리스의 밥 크롤 경찰 노조 대표는 “플로이드가 강력 범죄 기록을 많이 갖고 있다”고 공개했다.

데일리메일 역시 젊은 시절 미식축구 등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구의 46세 남성 플로이드가 10건 가까운 전과를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절도와 마약 소지, 주거 침입, 경찰 체포 불응은 물론 무장 강도까지 수 차례 저질렀다.

플로이드는 이런 이유로 2009년부터 5년 간 텍사스주 연방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기도 했다. 지난달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엔 20달러짜리 위조 지폐를 사용한 혐의를 받았으며, 경찰 체포 과정에서도 순응하지 않았다. 사망 후 부검 결과 필로폰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플로이드가 거주했던 미네소타주에선 1000달러 이하 위조 지폐를 사용할 경우 최대 징역 1년형 또는 3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플로이드는 위폐로 담배를 사려고 했다는 편의점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가혹 행위로 지난달 25일 사망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촉발했던 로드니 킹 사건 역시 비슷한 맥락이란 지적이다. 킹이 과속운전 혐의로 붙잡혀 백인 경관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 당하는 영상이 공개된 뒤 미 전역에선 시위와 폭동이 발생했다. LA 한인 상권이 쑥대밭이 되기도 했다.
[영상] 1991년 3월 로드니 킹을 구타하는 위 영상이 지역 방송사에 전달된 뒤 LA 폭동이 발생했다. 50여명이 사망했다.

[영상] 1991년 3월 로드니 킹을 구타하는 위 영상이 지역 방송사에 전달된 뒤 LA 폭동이 발생했다. 50여명이 사망했다.

25세의 건설 노동자였던 킹은 1991년 3월 3일 오전 12시30분쯤 현대차 엑셀을 탄 채 친구 두 명과 함께 LA 교외 고속도로를 운전했다.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TV로 농구 경기를 본 후였다.

킹은 과속 운전하다 적발됐으나 “차를 세우라”는 경찰 명찰에 불응한 채 도주하기 시작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188km에 달했다. 킹은 추후 “강도 후 붙잡힌 뒤 가석방 된 상태여서 음주운전으로 또 걸리면 가중 처벌될까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차 여러 대(경관 14명)가 사방에서 킹의 차를 뒤쫓았다. 약 13km를 더 달린 뒤에야 킹의 차를 세울 수 있었다. 킹은 차에 내려서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킹이 손을 엉덩이 뒤로 가져가자 무기 소지 가능성을 의심한 경찰은 즉각 그를 제압하고 나섰다. 경찰들의 집단 구타가 시작된 시점이다.
역사는 반복되나. 1991년 3월 미 LA에서 발생한 구타 사건 직후 언론에 공개된 흑인 로드니 킹의 상처 투성이 얼굴. 구글 캡처

역사는 반복되나. 1991년 3월 미 LA에서 발생한 구타 사건 직후 언론에 공개된 흑인 로드니 킹의 상처 투성이 얼굴. 구글 캡처

인근에 거주하던 조지 홀리데이는 우연히 이 장면을 모두 촬영할 수 있었다. 그가 지역 방송국(KTLA)에 영상을 제보하면서 흑인 폭동의 발단이 됐다. 이 사태로 경찰 및 군인 10명을 포함해 50여명이 사망했고, 9500여명이 약탈·방화 등 혐의로 체포됐다.

약 2년 간의 재판 끝에 킹을 구타했던 경관 2명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LA시는 킹에게 380만달러를 배상했다.

킹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수 차례 마약 투여 및 폭력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중에 회고록을 쓰기도 했으며 2012년 마약에 취해 자신의 수영장에 빠져 익사한 채 발견됐다.

플로이드와 킹에 대한 경찰의 가혹 행위는 오랫동안 누적돼 온 선입견이 현장에서의 상황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전체 인구 중 13%를 차지하는 흑인의 범죄 후 수감률은 2009년 기준 4.7%에 달했다. 반면 전체 인구의 64%인 백인 수감률은 0.7%뿐이다. 흑인 수감률이 백인 대비 7배나 높을 정도로, 흑인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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