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민 문의 10배 급증…英 "홍콩인 31만 명에 시민권 확대"
싱가포르·아일랜드·포르투갈 등도 인기 이민지역 떠올라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홍콩인들의 탈출 열풍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홍콩의 경제·통상 부문 특별 지위를 박탈할 가능성에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이 추락하고,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자유와 인권 등에 제한이 가해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이민을 떠나는 홍콩인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29일 홍콩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하면서 최근 들어 홍콩 내 이민 서비스 전문업체 등에는 해외 이민을 문의하는 홍콩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1997년 홍콩 주권반환, 2014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등 정국이 요동칠 때마다 외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의 수가 크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민 서비스업체의 한 임원은 "홍콩보안법 제정 소식이 들려오자 하루 만에 대만 이민 문의가 통상적인 수준의 10배로 늘었다"며 "많은 사람이 구체적인 이민 요건 등을 문의했다"고 전했다.

홍콩인의 대만 이민은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지난해 6월 이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 시민은 5천858명으로 2018년 4천148명보다 41.1% 급증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심해진 지난해 9월 이후에는 매월 600명 이상이 대만으로 이주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인이 1천243명에 달했다.

대만으로 유학하려는 홍콩 학생의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올해 들어 3천427명이 대만 대학 학사과정에 등록해 지난해 2천77명보다 65% 급증했다.

석·박사 과정 등을 합치면 올해 대만으로 유학하는 홍콩 학생의 수는 5천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 대만의 중국 본토 담당기구인 대륙위원회 천밍퉁(陳明通) 위원장은 입법원(국회) 내정위원회에 출석해 홍콩인의 대만 거주, 거처 마련, 보살핌을 3대 정책 목표로 삼아 1주일 내로 지원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만처럼 홍콩과 같은 유교 문화권인 데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싱가포르로 향하는 홍콩인들도 늘고 있다.

홍콩 재벌과 부자들,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콩 내 자금을 빼내 싱가포르로 이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들은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녀 입학과 관련해 문의하는 홍콩인들의 수가 급증하고, 실제로 입학하는 홍콩인 학생의 수도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홍콩보안법 후폭풍…홍콩인 '탈출 열풍' 본격화하나

대만과 더불어 영국으로 향하는 홍콩인의 수도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자 홍콩에 있는 영국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 소지자들은 이민 등을 위해 영국 정부에 완전한 시민권을 보장해 달라는 청원 운동을 벌였다.

1997년 홍콩 반환 전 영국 정부가 발급한 BNO 여권을 보유한 사람은 31만4천여 명에 달한다.

영국은 홍콩 시민이 BNO 여권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영국 영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도록 했지만, 영국 시민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홍콩인들이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 앞으로 몰려가 시위까지 벌여도 꿈쩍 안 하던 영국 정부는 중국의 홍콩보안법 강행에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전날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부 장관, 도미닉 라브 외무부 장관은 BNO 여권 보유자에게 영국 시민권 부여를 포함해 권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파텔 장관은 트위터에서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추진하는 게 매우 유감이며, 법이 시행되면 홍콩 주민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라브 장관은 현재 BNO 여권을 소지하고 영국에 입국하면 6개월을 체류할 수 있지만, 이를 12개월로 연장해 직장과 학업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31만여 명에 달하는 BNO 여권 소지자 중 상당수가 홍콩보안법 시행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거나 유학을 떠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투자이민이 상대적으로 쉽거나 시민권 획득이 비교적 쉬운 국가로 향하는 홍콩인의 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홍콩인 100여 명이 홍콩의 정정 불안을 피해 아일랜드로 투자이민을 신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포르투갈 역시 홍콩인들에게 인기 이민지역으로 부상했다.

시민권 획득이 비교적 쉬운 데다 포르투갈 시민권을 따면 유럽연합(EU) 시민권까지 확보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 언론은 "해외 이민 문의 등이 많이 늘어나는 것은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에 이어 올해 홍콩보안법 제정이라는 정치적 격변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 홍콩인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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