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커밍스, 자택 아닌 부모집으로 이동해 자가격리 위반 논란
"봉쇄령 중 가족과 관광지 방문했다" 목격자도 등장
야권 "사실이라면 사퇴해야" 총공세…내각, 커밍스 감싸며 사퇴요구 일축
"영 총리의 복심, 코로나 증상에도 400㎞ 이동…관광지도 방문"(종합2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수석 보좌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증세를 보이면서도 400㎞를 이동한 사실이 드러나 봉쇄령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야권은 실세로 꼽히는 이 수석보좌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공세에 나섰고, 내각은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맞섰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러 등에 따르면, 도미닉 커밍스 영국 총리 수석 보좌관은 지난 3월 말 코로나19 감염된 징후가 있었지만, 더럼에 있는 자신의 부모 집을 방문했다.

커밍스는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발령한 봉쇄령에 따라 런던의 자택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했지만, 런던에서 400㎞ 떨어진 더럼까지 이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커밍스는 존슨 총리가 3월 27일 자신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밝힌 직후 주말에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느꼈다고 한다.

총리실은 당시 커밍스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더럼에 있다는 사실까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커밍스는 이후 2주간 격리를 거쳐 지난 4월 14일 업무에 복귀했다.

커밍스의 한 측근은 BBC 방송에 그가 더럼까지 간 것은 맞지만 보건 규정을 어기지 않았으며,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부모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커밍스가 더럼에서 50㎞ 정도 떨어진 유명 관광지를 방문한 것을 봤다는 복수의 목격자도 나타나 이런 해명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가디언이 지적했다.

목격자 중 한 명은 커밍스가 런던에서 사진에 포착된 이튿날인 4월 19일 더럼에서 그를 봤다고 주장했다.

또 그로부터 1주일 전 부활절인 같은 달 12일에는 커밍스와 부인, 그리고 아이가 바나드 캐슬에서 점심시간 무렵 차에 타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자도 나왔다.

이 목격자는 집으로 돌아가 차량 번호를 확인한 결과 커밍스 소유의 차가 맞았다고 증언했다.

"영 총리의 복심, 코로나 증상에도 400㎞ 이동…관광지도 방문"(종합2보)
이에 대해 커밍스는 총리실을 통해 밝힌 입장에서 "지난달 13일 더럼을 떠나 런던으로 돌아와 14일 업무에 복귀했으며, 그리고 더럼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며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앞서 커밍스는 이날 런던의 자택 밖에서 진을 친 기자들이 사퇴 가능성을 묻자 "결코 그럴 일은 없다"며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커밍스는 14일 런던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고, 런던에서 업무를 보던 중 다시 19일 더럼을 찾아 봉쇄령을 또 어긴 셈이다.

그는 한 기자가 보기 좋지 않은 행동이었다고 하자 "당신들이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규정에 맞도록) 바르게 행동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야권은 정부 '실세'인 커밍스가 봉쇄령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즉각 공세에 나섰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이언 블랙포드 하원 원내대표는 존슨이 커밍스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유민주당(LD)도 정부 지침을 어겼다면 사퇴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대변인 논평을 내고 총리실이 커밍스의 행동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면서 "영국인은 일반 국민과 커밍스를 위한 규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동당은 봉쇄령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촉구했다.

"영 총리의 복심, 코로나 증상에도 400㎞ 이동…관광지도 방문"(종합2보)
내각은 커밍스 방어에 나섰다.

총리실은 "커밍스 보좌관은 아내가 코로나19에 걸리고, 자신도 감염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4살짜리 아들을 맡기기 위해 이동했던 것"이라며 "커밍스의 행동은 코로나19 지침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랜트 섑스 교통부 장관도 "존슨 총리가 커밍스 보좌관에게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며 "다만 존슨 총리가 커밍스 일을 언제 알았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미 영국에서는 봉쇄령을 어긴 것으로 드러난 정부자문위원과 보건 책임자가 잇따라 사퇴한 적이 있어 커밍스의 봉쇄령 위반 논란은 당분간 여야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코로나19 대응 방안을 조언해 온 임피리얼칼리지의 닐 퍼거슨 교수는 자신의 집에 애인을 부른 사실이 밝혀져 정부 자문위원직을 사퇴했고, 스코틀랜드 최고의료책임자인 캐서린 칼더우드 박사도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별장에 두 차례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 자리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커밍스는 영국 언론들이 '막후 조종자'로 묘사할 만큼 정부의 가장 막강한 실세로 알려진 인물이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당시 EU 탈퇴 진영 전략을 책임졌던 커밍스는 존슨 내각에서 브렉시트를 비롯한 핵심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4월 말에는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을 조언하는 과학자문그룹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 자문그룹의 정치적 독립성과 신뢰성을 해쳤다는 논란에도 직면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