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봉쇄령 잇단 연장 덕분에 '선방'…감염 정점 앞두고 안심 못해
[특파원 시선] 코로나19로 시험대 선 남아공 흑인 민주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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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민주정권이 출범 4반세기만에 시험대에 올랐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난 3월 27일 발빠르게 봉쇄령을 실시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당초 3주간의 봉쇄령을 2주 더 연장한 데 이어 5월에도 단계별 완화로 들어가자 '경제를 결딴낼 수 있다'는 등 비판 여론이 국내에서 빠르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남아공 봉쇄령은 주류와 담배 판매도 일절 금지하고 바깥 운동과 산책도 못하게 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록다운'의 하나로 통한다.

나라 전체가 코로나19로 8주 넘게 청교도적 금주령과 금연령을 실시한 셈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당초 5월 1일부터 담배 판매를 재개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정부의 세부 지침 발표 때는 이를 번복해 담배 판매를 계속 금지했다.

국민 건강상 담배 판매에 반대하는 청원이 2천건 넘게 들어와서 그랬다는 해명인데, 흡연자와 담배회사로부터 "음성적 불법 판매만 부추긴다"는 거센 반발을 산 것은 물론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이 들게 했다.

남아공 봉쇄령은 5월부터 총 5단계 경보 시스템으로 세분화한 가운데 제4단계로 조금 완화됐다.

이어 이달 말까지 일부 핫스폿(집중 발병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3단계로 추가 완화될 것이라고 라마포사 대통령은 밝힌 바 있다.

남아공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닥치기 전부터 침체 상황에 빠져든 데다 국유기업 구조조정 미흡 등으로 무디스조차 남아공 국가신용등급을 '정크본드'로 강등한 상황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선진화됐다는 남아공 경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록다운 때문에 올해 16.1%나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파원 시선] 코로나19로 시험대 선 남아공 흑인 민주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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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아공 정부는 봉쇄령 완화를 급속히 진행할 경우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봉쇄령 덕분에 그나마 대응시간을 벌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미국이나 유럽처럼 걷잡을 수 없이 코로나19 환자가 넘쳐났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산소호흡기와 중환자실(ICU), 개인보호장구(PPE) 등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남아공 보건 의료시스템이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남아공 코로나19 발병 궤도를 보면 초기에 비슷한 확진 증가율을 보이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영국(21일 현재 누적확진 25만908명·사망 3만6천42명) 등과 달리 봉쇄령 도입 이후 비교적 완만한 상승 곡선을 보이고 있다.

봉쇄령의 효과를 어느 정도 봤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아공이 봉쇄령 덕분에 선방한 것은 다른 브릭스(BRICS)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확연하다.

21일 현재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남아공은 발병국가 중 34위(누적 확진자 1만9천137명·사망자 369명)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13위, 확진 8만2천967명·사망 4천634명)은 차치하고라도 브라질은 같은 남반구지만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코로나19 자체를 평가절하하면서 3위(확진 29만4천152명·사망 1만9천38명)를 차지했다.

인도는 남아공처럼 연이은 봉쇄령에 들어갔지만 확진자 규모(11만4천478명·사망 3천465명)가 11위다.

미국이나 유럽 다른 나라보다 뒤늦게 발병이 본격화된 러시아는 미국(확진 159만7천130명·사망 9만5천118명)에 이어 2위 규모(확진 31만7천554명, 사망 3천99명)이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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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정부가 지난 20일 처음 공개한 전문가들의 코로나19 발병 예측 모델에 따르면 감염 정점은 7월 초∼8월 중순으로 그때 발생하는 확진자가 최소 1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또 6월∼11월 4만∼4만5천명이 사망할 수 있으며 현재 중환자실 3천300개 정도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물론 이 같은 수치가 꼭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남아공 국방군(SANDF)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경기장까지 활용해 야전병원 4곳을 5천만 랜드(약 35억원)를 들여 세울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경제중심 요하네스버그 등은 대규모 집단 매장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현지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마포사 대통령은 봉쇄령을 완화하고 소외계층을 잘 보살피겠다고 하지만 알맹이 없이 그저 발표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20년 전 남아공에 에이즈 바이러스(HIV)가 창궐할 때 일치된 대응을 촉구한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이번 팬데믹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역사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당장 흑인밀집 지역인 타운십과 무허가촌에선 주로 흑인들이 자선식량 배급을 받으려고 길게는 수㎞씩 밤샘까지 마다하며 줄을 서는 장면이 거듭 목격되고 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4년 소수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정책)를 끝낸 이후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중심으로 지금까지 26년간 이어온 흑인 민주정권의 명운도 어쩌면 이번 코로나19 대응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특파원 시선] 코로나19로 시험대 선 남아공 흑인 민주정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