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C 직원들 "우리는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백악관, 과학보다 정치 우선시"
CNN "CDC 3월초 유럽발 여행경보 검토…백악관, 중국에만 집중하며 일주일 허비"
백악관-CDC 갈등 점입가경 속 "'좌불안석' CDC국장 거취 위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미국 백악관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CDC 수장인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의 거취가 위태롭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CNN방송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비난할 누군가를 찾고 있는 와중에 CDC의 레드필드, 가시방석에 앉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날 공화당 상원의원들과의 '의회 회동'에서 CDC를 혹평한 뒤로 레드필드 국장의 운명이 불확실해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비공개 오찬 회동 자리에서 자신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과 그의 팀이 CDC가 망쳐놓은 코로나19 검사 문제를 성공적으로 잘 풀었다고 극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이 이 발언의 진위를 묻자 레드필드 국장이 일을 잘하고 있다며 오찬 때도 CDC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레드필드 국장은 지난주만 해도 동료들에게 자신이 곤란을 겪게 되거나 자리가 위태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행정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레드필드 국장은 수십년 지기인 데비 벅스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조정관과의 긴장도 일시적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말을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레드필드 국장은 자신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점점 더하게 됐다고 행정 부내 역학관계에 대해 잘 아는 한 소식통이 CNN에 전했다.

앞서 레드필드 국장은 동절기 재확산의 심각한 위험성을 경고한 인터뷰를 했다가 지난달 22일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브리핑 도중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연단에 호출돼 해명을 강요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실제 한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백악관과 CDC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레드필드 국장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공식적 논의가 진행돼 왔으며 백악관은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CNN에 귀띔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의 '총애'를 얻으며 코로나19 대응 관련 '실세'로 부상한 벅스 조정관을 중심으로 CDC의 자료 취합 방식 등에 대한 백악관의 불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미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CDC가 만든 미국 경제 정상화 관련 세부지침 자료가 언론에 유출된 것을 놓고 백악관이 강하게 항의하고, 결국 초안 보다 훨씬 더 완화된 내용으로 발표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 주말인 17일 대표적인 '매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이 코로나19 국면 초기의 진단키트 결함 사태 등을 거론, "이 위기의 초기에 CDC가 정말로 나라를 실망시켰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2명의 행정부 당국자는 나바로 국장의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 행정부 내에서 CDC에 대해 가진 좌절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CNN에 전했다.

나바로 국장 본인도 자신의 발언이 너무 나간 게 아닌지 걱정했으나, '그렇지 않다'면서 트럼프 대통령도 CDC를 공개적으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국자들의 말에 안심했다고 한다.

코로나19 대응의 주무 기관인 CDC가 백악관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면서 CDC 내부에서 소외감도 점점 커지는 분위기이다.

백악관에 대한 불만도 팽배해지고 있다.

CNN은 별도의 기사에서 "우리는 재갈이 물린 상태였다", "백악관은 과학보다 정치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CDC 내부의 기류를 전했다.

CNN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면 초기 CDC는 유럽과 그 외 지역 내 감염자 증가 추이를 추적했으며 국제적 여행 경보를 발령하는 방안을 제안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경보가 발령되기 전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그사이 매일 6만6천명의 유럽발 여행자들이 항공편으로 미국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CNN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CDC는 당초 지난 3월 5일 밤 국제적 여행 금지 경보를 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경보 발표는 같은 달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발 여행 금지 조치를 발표하기 전까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CDC의 한 고위 당국자는 CDC가 유럽을 통한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 가능성을 백악관에 경고했으나 백악관은 극도로 중국에만 집중한 채 유럽을 화나게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고 CNN이 보도했다.

백악관이 CDC의 경고를 묵살했고 유럽발 입국을 조기에 봉쇄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코로나19 확산을 방치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CDC 인사들은 이러한 조치 지연이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고 73년 전통의 CDC를 왜소화시켰다고 지적했다고 CNN은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레드필드 국장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가 일을 매우 잘한다고 생각한다"며 CDC에 훌륭한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공화당 의원과 오찬 때 레드필드 국장에 대해 불평했다는 보도와 관련해선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누가 여러분에게 그 얘기를 전했는지 모르지만 이는 가짜 뉴스"라고 부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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