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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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미국 할리데이비슨이 제품 라인업을 간소화하고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딜러사에 공급하는 물량도 확 줄이기로 했다. 제품의 희소성을 높이고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강화해 '판매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겠다는 구상이다.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스 트루엣 할리데이비슨 제품 판매 담당 이사는 이달 초 딜러사들에게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트루엣 이사는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회사를 바로잡고자 한다"며 "우리는 할리데이비슨을 세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브랜드로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딜러사 중 70%는 올해 오토바이를 추가로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상치 못한 소식을 접한 딜러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3월 미국 전역의 공장 문을 닫았다. 이번주 들어서는 이 공장들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698개에 달하는 딜러사들은 할리데이비슨 공장의 재가동 일정에 맞춰 영업 재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할리데이비슨의 새 전략은 전임 최고경영자(CEO)인 매슈 래바티치가 추구하던 방향과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래바티치는 할리데이비슨의 고객층을 확대해야 한다고 믿었다. 주요 고객인 베이비 부머(1946~1964년생)들이 선호하는 크고 값비싼 오토바이만 팔아서는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그는 2027년까지 작고 저렴한 신형 모델 수십여개를 준비해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5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은 판매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월 사임했다.

래바티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현재 CEO를 맡고 있는 조헨 자이츠의 생각은 다르다. 무리한 제품 라인업 확대와 신시장 개척 때문에 오히려 수익성이 감소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여러 종류의 오토바이를 공장에서 생산하다보니 생산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딜러사 공급 물량을 줄이는 것은 브랜드의 희소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업체가 주로 쓰는 전략이다.

딜러사들은 매출 감소 우려를 나타내며 반발하고 있다. 일부 딜러사들은 겨우 1~2개월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리점주는 "할리데이비슨의 계획대로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고 오토바이 가격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딜러사를 운영중인 조지 가토 씨는 "할리데이비슨으로부터 새 제품을 공급받지 못한 딜러사들은 중고 판매 비중을 늘려야 할 것"이라며 "중고품 재고 확보 경쟁이 치열해져 중고 가격이 최근 3주간 20%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할리데이비슨은 '메이드 인 USA'의 상징적인 제조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미국 안팎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국 시장 내에선 오토바이 수요가 감소했고, 해외에서도 인건비가 더 싼 생산기지를 갖춘 경쟁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작년엔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첫 전기자전거 모델인 라이브와이어를 출시했으나 매출은 계속 줄었다. 작년 할리데이비슨의 글로벌 소매 판매량은 21만8273대로 전년대비 4.3% 줄었다. 미국 내 판매량은 5.2% 감소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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