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중국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SMIC가 올해 43억달러(약 5조3000억원)를 설비 확장과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연초 내놨던 기존 계획보다 34% 급증한 규모다. 미국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를 향해 ‘탈(脫)중국’ 압박을 강화하자 SMIC가 이를 자국 정보기술(IT) 기업 물량을 따내기 위한 기회로 포착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 정책에 발맞춰 화웨이 등이 SMIC에 대한 발주를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SMIC는 15일 올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올해 설비투자액으로 43억달러를 집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는 기존 계획 대비 11억달러 늘어난 규모며, 작년 전체 매출인 31억달러보다도 많다. 대규모 투자 배경으로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SMIC는 본사인 상하이 등 중국에 9개 공장을 운영 중이며 각 공장이 있는 지방정부로부터 상당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SMIC는 올해 투자할 43억달러를 공장 확대와 신기술 개발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SMIC의 기존 주력 제품은 40~60나노(㎚)급으로 7나노급을 양산하는 TSMC나 삼성전자와는 아직 격차가 크다. 하지만 지난 1월 화웨이로부터 14나노급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수주하는 등 중국 기업들의 몰아주기에 힘입어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SMIC의 올 1분기 매출에서 중국 기업 비중은 61.6%로 작년 1분기 53.9%에 비해 크게 늘었다. 미국 기업 비중은 32.3%에서 25.5%로 내려갔다.

SMIC는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35.3% 늘어난 9억491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93.7% 급증한 4734만달러를 달성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을 필수업종으로 분류한 덕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던 시기에도 중국 내 공장을 계속 돌렸고, 화웨이 등이 발주를 더욱 늘렸기 때문이다.

SMIC는 주 고객사인 화웨이가 미국의 ‘블랙리스트’로 지정되자 지난해 5월 뉴욕증시 상장을 자진 폐지했다. 중국 IT 기업의 반도체 물량을 상당 부분 생산해온 TSMC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커지면서 중국은 자국 파운드리 업체를 육성할 필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까지 자국 반도체 자급률을 40%로 높이고 2025년에는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