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동영상 스타트업 CEO로 복귀
'숏폼' 콘텐츠로 디즈니·넷플릭스에 도전

여성 경영인 신화 다시 쓸까
"퀴비는 내 경력 중 가장 파괴적
사람들 영상 체류시간 점점 짧아져
기술력으로 OTT업계 판도 바꿀 것"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세계 최대 온라인 마켓을 만든 주인공’ ‘신화적인 여성 경영인’으로 불려온 멕 휘트먼이 돌아왔다. 과거 이베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휘트먼은 이번엔 짧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를 제공하는 신생 회사 퀴비(Quibi)의 경영자가 됐다. 세상에 없던 기술력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 틱톡 등과 경쟁하겠다며 야심차게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출시 2주 만에 애플 앱스토어 50위 밖으로 밀려나는 등 고전하고 있다. 휘트먼은 독특한 리더십과 꼼꼼한 경영 스타일을 바탕으로 이베이를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선택한 스타트업 퀴비가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초 ‘돌리는 화면’ 차별화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휘트먼은 한 시간에 걸친 기조연설을 통해 퀴비를 소개했다. 퀴비는 퀵 바이츠(Quick Bites)를 줄인 말로 ‘한 입 거리’를 뜻한다. 짧게는 4분, 길어야 10분짜리 동영상 콘텐츠다. PC나 TV로도 볼 수 있는 다른 OTT와 달리 스마트폰 전용이다.

드림웍스 공동 창업자이자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회장을 지낸 제프리 카젠버그는 휘트먼을 CEO로 영입해 2018년 8월 퀴비를 설립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 제작자를 파트너로 내세웠고 디즈니와 알리바바 등으로부터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받았다. 젊은 Z세대를 위해 거물들이 뭉쳤다는 평가다.

퀴비는 사람들의 영상 체류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휘트먼은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출퇴근길처럼 짧은 시간에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2시간짜리 영화를 10분도 안 되게 잘라 매주 혹은 매일 공개한다. 영상이 짧다는 점에서는 유튜브와 틱톡, 제작비가 많이 드는 콘텐츠란 점에선 넷플릭스를 닮았다.

세계 최초로 ‘턴스타일’을 채택해 차별화했다. 스마트폰을 가로로 보다가 세로로 돌려도 영상이 잘리지 않고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를 위해 제작 단계부터 넓은 영상을 찍은 뒤 가로 및 세로 방향에 따라 자른 다음 붙이는 작업을 거친다. 같은 콘텐츠라도 가로 화면은 3인칭 관찰자 시점, 세로 화면은 주인공 시점으로 각각 감상할 수 있다.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게 휘트먼의 설명이다.

치열한 OTT시장…반응은 ‘글쎄’

지난달 초 미국과 캐나다에서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창업 초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게 무색할 만큼 고전했다. 첫날 앱 다운로드 건수는 30만 건으로 반 년 전 론칭 첫날 400만 건을 기록했던 디즈니 플러스에 비해 턱없이 초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순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볼 게 없다”는 반응이다. 다른 OTT와 비교할 때 간판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퀴비가 제공하는 타이틀은 50여 개에 불과하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연말까지 175개 오리지널 콘텐츠를 순차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독 요금도 비싼 편이다. 광고 없는 상품이 월 7.99달러다. 반면 애플TV 플러스의 광고 없는 상품은 월 4.99달러이고, 아이폰 등 애플 제품을 구매하면 1년간 무료다.

글로벌 기업들의 OTT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워너미디어는 이달 말 OTT HBO맥스를 선보이고 AT&T는 무료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컴캐스트는 지난달 OTT 피콕을 출시했으며 애플도 애플TV 플러스 가입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팁톡은 다운로드 20억 건을 돌파했고 콰이쇼는 틱톡 대항마인 스낵비디오를 출시했다.

퀴비의 미래를 둘러싼 전망은 엇갈린다. 블룸버그는 “퀴비가 내세우는 턴스타일이 대중의 시청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돌려가며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조치가 끝나면 OTT 신규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이끈 30여 년 노하우와 내공
멕 휘트먼 퀴비 CEO '온라인 마켓' 이베이 키운 여장부

휘트먼은 “퀴비는 내 경력 중 가장 파괴적이고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라며 “업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퀴비 창업자인 카젠버그는 “자신만의 리더십과 전문 지식, 기술과 소비자에 대한 이해로 오늘날 가장 중요한 글로벌 기업들을 구축하고 확장해 왔다”며 휘트먼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실제로 휘트먼은 숫자에 근거해 철두철미한 경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 충고와 비판에 귀를 기울인 뒤 회사 정책에 반영하는 등 경청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이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다.

1956년생인 휘트먼은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땄다. 1979년 ‘마케팅 사관학교’로 불리는 프록터앤드갬블(P&G)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 베인앤드컴퍼니로 옮겨 8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다. 이후 월트디즈니, 스트라이드 라이트, FTD, 하스브로 등에 연달아 스카우트됐다.

1998년 이베이 CEO로 취임한 뒤 2008년까지 재직하면서 직원 30명의 매출 400만달러였던 이베이를 퇴직 당시 1만5000명의 직원과 연매출 80억달러를 내는 대기업으로 키웠다.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다양한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나만의 노하우와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휘트먼은 2011년부터 6년간 휴렛팩커드(HP) CEO로 일하면서 “회사의 변화와 도전을 이끌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여장부 기질은 맹렬 여성이었던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이베이 사장에 취임하기 위해 외과의사인 남편이 일을 그만두도록 한 뒤 두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옮길 정도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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