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급기야 금융시장으로까지 옮겨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최대 퇴직연금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투자에 제동을 걸면서다. 미·중 갈등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싼 책임 공방과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 움직임, 미·중 무역갈등 재개에 이어 금융부문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中 주식 사는 건 공산당에 자금 대는 것"…美, 금융시장까지 압박
“중국 주식투자, 국가 안보에 위협”

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투자 논란이 수면 위로 불거진 건 지난해 11월부터였다. 당시 공무원연금 운용위원회는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의 벤치마크 지수를 중국이 빠진 ‘모건스탠리 유럽·호주·극동지수’에서 중국 기업이 10%가량 포함된 ‘모건스탠리 미국 제외 전 세계지수’로 변경하기로 했다. 성장성 높은 중국 기업에 투자해 투자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운용위는 이 같은 포트폴리오 변경을 올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공무원연금이 운용하는 해외주식펀드는 지난 3월 말 기준 410억달러에 달한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7월부터 미국 전·현직 연방공무원과 군인의 퇴직연금 자금 중 41억달러가량이 중국 기업에 투자된다.

운용위의 결정에 당시 대중국 강경파인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미국 공무원과 군인의 퇴직연금이 미국 경제와 안보를 해치려는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자금을 대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투자를 막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포트폴리오 변경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올 하반기부터 중국 주식에 투자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백악관은 지난 11일 공무원연금을 감독하는 노동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중국 주식투자가 “연방정부 직원의 돈을 중대한 국가 안보와 인도주의적 우려가 있는 (중국) 회사들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결정적 증거를 은폐했으며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이 제재나 보이콧을 당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기업의 불투명한 기업정보 공개도 문제로 거론했다. 이런 중국 기업에 투자하면 미국인들이 투자 손실을 볼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치는 다른 연기금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이 같은 행보엔 행정부 안팎에 포진한 대중 강경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 외에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중국에 대항해 행동하길 원했다”고 보도했다.

금융시장에서 더 강한 중국 규제 나올까

트럼프 행정부가 금융시장에서 더 강력한 ‘중국 규제’를 내놓을지도 주목된다. 이번 조치가 상당히 오랫동안 검토해온 현안 중 하나라는 점에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해 9월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이 중국 관련 유가증권시장 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증시에서 거래되는 중국 기업 상장폐지, 공무원연금 등의 중국 시장 투자 차단, 주식 관련 투자지수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상한 설정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백악관이 이번에 꺼낸 ‘공무원연금의 중국 주식투자 금지’는 당시 보도된 내용 중 하나다. 미·중 관계가 악화되면 백악관이 더 강력한 금융규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한 이유다.

미·중 갈등은 올해 1월 15일 1단계 무역합의를 계기로 ‘휴전’ 국면에 접어드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로 미국 내 사망자가 8만 명을 넘어서고 경제가 마비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때리기’를 통해 표 몰이를 하고 있다. 중국이 코로나19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해 전 세계가 초기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며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나바로 국장은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은 (코로나19로) 세계에 엄청난 피해를 줬다”며 “우리가 이 전투를 치르기 위해 책정해야 했던 비용은 10조달러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어떤 형태로든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빠져나와 미국으로 돌아오면 이전비용을 세금에서 깎아줄 수 있다며 ‘탈중국’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앞으로 2년간 2000억달러어치의 미국 제품을 추가 구매하기로 한 1단계 무역합의를 위반할 경우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중국은 내수 수요가 급감하면서 합의 이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