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 훼손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은 반도체 ‘자급’에 나섰고 중국은 반도체 굴기에 더욱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13일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SMIC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스마트폰용 반도체칩 ‘기린 710A’ 양산에 들어갔다. 이 칩은 화웨이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에서 설계했다. 중국 기업이 100% 지식재산권을 가진 첫 반도체로, 해외는 물론 대만 기술에도 의존하지 않고 자체 힘으로 개발한 것이다.

당초 기린 710 시리즈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12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양산됐는데, 이번 기린 710A는 14㎚ 공정 반도체다. SMIC는 최근 자사 모든 직원에게 기린 710A를 탑재한 화웨이 스마트폰 ‘플레이 4T’를 지급했다. 업계 관계자는 “SMIC가 양산에 들어간 14㎚ 반도체 상용화를 가늠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먼저 지급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 정책의 일환으로 SMIC를 지원하고 있다. SMIC는 중국 국유 통신기업과 국유 펀드 등이 출자한 기업이다.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의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화웨이는 올 들어 TSMC에 의존해온 반도체 제조 물량을 SMIC에 몰아주고 있다. 업계에선 화웨이가 미·중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선 코로나19로 세계 공급망이 언제든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 자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기술의 아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TSMC 공장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미국 정부 내에선 반도체를 기술 패권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자국 내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미 국방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디지털 경제는 중국과 대만, 한국이라는 삼각 축에 기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풀기 위해 반도체 자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