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초기 허점 드러난 연방제…연방정부·주정부 합의통해 전열 정비
정치권의 비판과 견제 지속…극우 주동 '제한조치 철회' 시위에 비판 '한목소리'
[특파원 시선] 팬데믹에도 작동한 독일식 '정치 타협의 기술'

전염병 방역과 상치되는 개인의 자유 제약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서도 독일 정치의 '타협의 기술'은 평소와 다름없이 작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중앙 권력에 힘이 급격히 쏠린 유럽의 여러 국가와는 다른 모습이다.

기독민주당, 기독사회당, 사회민주당 등 3개 정당 간의 대연정은 방역 대책에서 이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신속히 조율해 갔다.

연방정부와 16개 주(州)정부는 파열음이 나기도 했지만, 결국 합의를 통해 방역 체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야당도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당의 정책적 기조에 맞추고 있다.

무조건식의 발목잡기 행태는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은 방역 대책 중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선 긴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 제약과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꼼꼼하게 따져갔다.

비상 상황에서도 독일식 민주주의 시스템의 전원은 내려가지 않았다.

◇ 확산 초기 우왕좌왕…연방제 문제점 드러나
2월 말에서 3월 초 중순까지 코로나19 확산 사태 초기만 해도 독일의 대응은 정교함과 철저한 준비성이라는 기존 국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이 컨트롤 타워를 지휘했지만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당국은 무증상 전파라는 이미 입증된 코로나19의 특성을 간과했다.

환자가 접촉한 이들을 찾는 시스템을 구축해두지 않았다.

연방정부는 주 정부에 이를 맡긴 듯한 모습이었고, 주 정부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주별로 전염병 사태에 대한 인식 차도 컸다.

카니발과 클럽을 통해 일어나는 집단 감염에 속수무책이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해선 세계보건기구(WHO)의 방침에 따라 효용성보다는 잘못된 착용에 따른 위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슈판 장관은 주 정부들을 상대로 1천명 이상의 행사를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다.

대형 행사 금지 문제를 놓고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전까지 각 주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은 보건과 교육 등 상당 분야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을 갖고 있다.

난맥상이 계속되자 전염병 앞에서는 연방제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파원 시선] 팬데믹에도 작동한 독일식 '정치 타협의 기술'

◇ 진통 속 연방정부와 주 정부간 합의…중앙정치권도 생산적 논쟁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16개 주 총리들은 지난 3월 15일 오후 방역 대책회의를 하고 장시간 논의 끝에 다음 날부터 각종 행사와 상점 운영 등을 금지하는 공공생활 제한 조치를 내리는 데 합의했다.

같은 달 22일에도 회의를 하고 2인 초과 접촉제한 조치에 합의했다.

이런 합의를 이루기에 앞서 각 주의 목소리는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면서 독일은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연방하원은 정부가 3월 말 마련한 1천560억 유로의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내각회의에서 합의된 지 3일 만에 통과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각 정당은 자기 목소리를 냈다.

녹색당은 코로나19 대응 예산이 친환경 전환을 위한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당은 5월 초 화상으로 열린 전당대회에서 코로나19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환경 문제에 대처하는 기조를 유지하도록 정책을 개발하는 대전환의 계기로 삼자고 뜻을 모으기도 했다.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유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코로나 19 대응 조치에 동의한다면서도 국가가 독재적 형태로 변하거나 경제가 국가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공공생활 제한이 길어지고 완화 문제를 놓고 일부 주들이 먼저 완화 조치를 내놓으면서 언론에서 보조를 맞춰온 전열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와 16개 주 총리들은 지난 6일 회의를 하고 접촉제한 조치를 연장하되 내용을 다소 완화하고, 마스크 의무화와 1.5m 거리 유지 등을 계속 지키기로 했다.

그러면서 학교와 음식점 운영 재개 등에 대해 주별 확산 추이 및 산업적 특성에 맞게 실시하도록 했다.

16개 주가 기본적인 공통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가운데 자율적인 조처를 하도록 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공통적인 대응 틀을 유지하는 묘미를 발휘한 것이다.

회의에서는 일주일간 확진자 수가 10만 명당 50명을 넘을 경우 해당 주에서는 완화정책을 철회하도록 해 자율적 조치에 따른 책임감을 높이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했다.

각 주 정부의 연정 구성은 다양하기 때문에 연방정부와 16개 주 간의 합의에는 다양한 정당의 입장이 일정 부분 반영될 수 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는 기본권 제약을 놓고 논쟁도 일었다.

[특파원 시선] 팬데믹에도 작동한 독일식 '정치 타협의 기술'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하원 의장은 지난달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인명 보호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면서 헌법 격인 기본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이에 앞선다고 지적,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연정 소수파인 사회민주당 측에선 쇼이블레 의장의 발언이 제한 조치의 해제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한 반면, 대연정 다수파 기독민주당의 차기 유력 주자인 아르민 라셰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총리는 쇼이블레 의장의 발언을 지지했다.

다만, 논쟁은 기본법에서 규정한 생명권 보호와 개인의 자유 제약에 대한 가치의 경중을 놓고 벌어졌을 뿐 소모적인 정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6개 주에서 외출제한령을 내려 가장 강력한 기본권 제약을 실시 중인 바이에른주의 마르쿠스 죄더 총리는 오히려 쇼이블레 의장의 발언을 옹호하기도 했다.

죄더 주 총리는 코로나 위기만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고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 파괴 등 유럽인이 야기한 여러 위기에 유념해야 한다면서 쇼이블레 의장의 발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런 논쟁에는 '셧다운'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불만도 반영돼 있다.

그런데도 재난 상황이라도 해도 기본권 제약과 같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를 간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한국식 방역 방식을 참고해 연방정부가 도입하려 한 확진자 및 접촉자에 대한 휴대전화 위치추적 체계도 정치권의 논쟁 속에서 초안보다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 방식으로 바꿔 도입하기로 했다.

[특파원 시선] 팬데믹에도 작동한 독일식 '정치 타협의 기술'

◇ 계속되는 논쟁…극우세력 준동에 진영 불문하고 비판
독일 정치권에서는 '타협, 합의의 기술'이 작동하면서도 현재도 정치적 논란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사회민주당과 야당은 지난 5일 연방정부와 16개 주 정부 간 합의에 대해 주 총리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한 경쟁의 결과라며 비판적인 시선을 보냈다.

녹색당은 주별로 조치가 다를 경우 연방정부가 전염병 대응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했다.

좌파당은 현재 통제권 아래 들어간 코로나19가 재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합의 내용을 비판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로베르트코흐연구소(RKI)는 최근 독일의 코로나19 재생산지수가 0.65까지 내려갔다가 완화 조치 이후 1.1로 올라갔다고 10일 발표하기도 했다.

정치권이 현안 별로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난 주말 베를린 등 주요 도시에서 공공생활 제한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린 데 대해 정치권은 진영을 불문하고 사회 불안감을 야기한다며 비판했다.

정치권은 시위에 극우세력이 개입돼 있다며 경계심을 보내고 있다.

기독민주당의 파울 치미아크 사무총장은 "극단주의자들이 코로나19 사태를 반민주적인 선전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녹색당의 콘스탄틴 폰 노츠 의원은 정부 조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시위대가 근본적으로 체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경찰과 취재진에 대한 공격을 비판했다.

독일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4월 초 7천명 가까이에 육박했으나, 지난 10일 하루 동안에는 357명으로 떨어지는 등 유럽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확산 사태가 통제되는 상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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