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몰린 항공사들이 ‘버티기 경쟁’에 돌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1분기 대규모 적자를 낸 데 이어 조만간 업황이 회복될 것이란 기대도 높지 않아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 항공주를 모두 손절매했다는 소식 역시 업계 우려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항공업계의 심각한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9·11 테러와 글로벌 금융위기, 저비용항공사(LCC) 등장에 따른 경쟁 심화, 유가 급등 등으로 주요 항공사 중 일부가 파산한 경험이 있다. 손실이 무서운 속도로 쌓이는 지금 상황에서 항공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어떻게든 현금을 끌어모은 뒤 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늘길 다시 열려도 적자 불가피”

항공사들은 코로나19 발병 직후 확 줄였던 항공편을 다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카타르 국영항공사인 카타르항공은 이달 52개 노선, 다음달에 80개 노선을 재개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카타르항공은 총 165개 노선에 취항했다.

대한항공은 화물 수송이 늘자 다음달부터 110개 노선 중 32개 노선의 운항을 다시 시작할 방침이다. 현재 운항 중인 국제선 노선은 13개뿐이다.

일부 항공사가 다시 하늘길을 열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진 않다. 에어프랑스-KLM은 7일(현지시간) 지난 1분기 18억100만유로의 순손실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몇 년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수요가 회복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2분기 적자 폭이 커지고, 그 결과 연간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항공사들은 비행기를 많이 띄울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미국 항공사 모임인 ‘에어라인스 포 아메리카’ 보고서에 따르면 상당수 노선을 폐쇄했는데도 미국 국내선당 탑승객 수는 평균 20~25명에 불과하다. 코로나19 이전(85~100명) 대비 4분의 1 수준이다.

일부 노선의 운항을 재개하더라도 ‘기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해 승객들 사이에 빈 좌석을 의무화할 경우 적자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브라이언 피어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기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 62%가량만 채울 수 있다”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좌석 요금을 지난해보다 43~54% 올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항공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요금 인상이 가능할지 의문이란 지적이다. 미국 저비용항공사인 프런티어항공은 옆 좌석을 비우는 대가로 탑승객당 39달러의 추가요금을 부과하려다 호된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항공업계가 완전히 정상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에어라인스 포 아메리카에 따르면 여객 수요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7년가량 걸렸다. 화물 수요 회복은 9년이나 소요됐다.
줄파산 직면한 항공사…'버티기 경쟁' 돌입
주요 항공사들 예외 없이 빚잔치 중

수년간 ‘고난의 행군’이 예상되자 항공사들은 유동성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면서 파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미국 4대 항공사인 델타·아메리칸·유나이티드·사우스웨스트항공의 1분기 손실은 총 45억7300만달러(약 5조6000억원)로 집계됐다. 항공기 제조회사인 보잉도 같은 기간 순손실이 6억4100만달러에 달했다. 유럽계인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KLM 역시 적자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런데도 고정비용 부담은 여전하다. 직원을 일부 구조조정하는 한편 배당을 줄이고 자사주 매입까지 중단하고 있지만 현금을 지키기엔 역부족이다. 도산을 면하기 위해 신규 대출을 신청하는 것은 물론 채권 발행 확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루프트한자는 독일 정부에 지분 25%를 제공하는 대가로 90억유로를 지원받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항공사도 거느리고 있는 루프트한자는 각 정부에서 구제금융을 받는 방안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국 국적 항공사들도 지난달 급여 지급 등 명목으로 정부에서 총 500억달러를 받기로 했다. 9월 말까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미 재무부에 지분 매입 권리를 내주는 조건이다.

일부는 대규모 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기 전에 최대한 현금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보잉, 델타항공 등은 지난달 말 총 32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가까스로 발행했다.

위기 때마다 파산 많았던 항공업계

항공사들이 각 정부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국가에 지분 매입 권리 등을 내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보잉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채권시장 문을 두드린 배경이다.

항공업계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경험이 적지 않다. 유나이티드항공은 9·11 테러 직후인 2002년, 델타항공은 유가가 급등한 2005년 각각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아메리칸항공도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파산보호 절차를 밟았다. 혹독한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M&A)을 거쳐 겨우 생존했다.

유럽 항공사 50여 곳도 지난 20여 년 동안 잇달아 부도를 냈다. 영국 여행정보 업체인 OAG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유럽연합(EU)의 주요 항공사는 192개로, 작년 말(207개사) 대비 15개 감소했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세계 항공업계가 또다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번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아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곳이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