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덴털에서만 30년 넘게 근무한
공격적 M&A 이끈 승부사
코로나發 저유가 위기 돌파할까
 일러스트=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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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이끄는 회사보다 다섯 배 큰 기업과 맞짱 떠 이긴 승부사’ ‘석유업계에서 가장 대담한 딜메이커’. 작년 5월 미국 CNN,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들이 비키 홀럽 옥시덴털페트롤리엄 최고경영자(CEO)를 두고 내놨던 평가다. 홀럽 CEO는 당시 셰일기업 아나다코 인수를 놓고 글로벌 기업 셰브런과 경쟁해 이겼다. 친환경 에너지기업 등에도 대거 투자했다.

딱 1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뒤집혔다. 그동안 벌여온 공격적인 투자가 역효과를 내고 있어서다. 옥시덴털 주가는 1년간 약 74% 폭락했다.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411억달러(약 50조2800억원)에서 139억7000만달러(약 17조900억원)로 쪼그라들었다. 홀럽 CEO는 지난달 해임 직전에 간신히 자리를 지켰다. 정유업계에선 그가 몇 달간 내릴 결정들이 옥시덴털 명운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외길 걸어온 ‘옥시덴털 우먼’

홀럽 CEO는 옥시덴털에서만 30년 이상 근무했다. 미 앨러배마주립대(UA) 광물학과를 졸업한 1981년 연료·전력기업인 시티서비스에 취직했다. 1년 뒤인 1982년 시티서비스는 옥시덴털에 인수됐다.

처음엔 자신의 학위를 살려 광산에서 일했다. 이후 거대 석유 시추지로 근무지를 옮겼다가 정유업에 눈을 돌렸다. “시추 일을 할 때마다 정말 신났고, 이 일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홀럼 CEO는 이후 경영과 기술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미국 각 지방을 비롯해 러시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에서 기술관리직을 맡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미 최대 셰일유전지대인 페름분지사업부의 운영책임자를 맡았다. 2013년 옥시덴털 부사장에 올랐고, 2016년 4월 CEO로 선임됐다. 여성이 미국 주요 에너지기업 CEO에 오른 최초 사례였다.

○공격적 투자로 ‘아나다코 경쟁’ 승리

홀럽 CEO는 대담한 투자를 여러 번 단행했다. 가장 공들였던 게 아나다코 인수다. 아나다코는 페름분지의 대형 시추권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페름분지사업부를 이끈 경험이 있는 홀럽 CEO는 아나다코 인수를 통해 셰일에너지업계의 선두로 올라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시가총액 기준 옥시덴털의 다섯 배 규모이던 셰브런이 아나다코와 우선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셰브런은 아나다코에 330억달러에 달하는 인수 금액을 제시한 상태였다.

홀럽 CEO는 과감한 공세로 전환했다. 먼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을 만났다. 아나다코 인수 조건으로 100억달러의 투자금을 받았다. 이후 인수 협상이 조금 진전을 보이자 모잠비크에 있는 아나다코 액화천연가스 자산을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 선도매도했다. 이를 통해 88억달러를 추가 확보했다. 인수 후 얻게 될 자산을 팔아 인수자금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인수 조건도 확 바꿨다. 셰브런이 제안한 금액보다 50억달러 많은 380억달러를 제시했다. 셰브런은 인수가의 25%를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옥시덴털은 현금 78%를 제안했다. 옥시덴털 일부 주주의 아나다코 매각 반대 움직임을 누르기 위한 조치였다. 현금 비중을 높이면 주주 투표를 거치지 않고 인수합병(M&A)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아나다코는 옥시덴털을 택했다. 셰브런엔 위약금 10억달러를 물어줬다. 옥시덴털의 아나다코 인수액은 부채를 포함해 580억달러에 달했다. 미 에너지업계의 M&A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이후 옥시덴털은 원유 및 셰일오일 생산량을 하루평균 130만 배럴로 늘렸다. 중동 산유국 리비아와 맞먹는 규모다.

○코로나·저유가에 휘청…위기 이겨낼까

옥시덴털이 ‘승자의 저주’에 휩싸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판돈을 크게 걸어 이기긴 했지만 시점이 나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에너지 수요가 크게 줄면서 유가가 폭락했다. 글로벌 에너지업계는 올해 국제 유가를 배럴당 평균 55~65달러로 예측했으나 이달 유가는 25~30달러 선에 불과하다. 인수 과정에서 끌어다 쓴 부채 때문에 재무구조도 크게 악화했다.

홀럽 CEO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인 칼 아이칸은 지난 3월 옥시덴털 지분율을 10% 가까이로 늘린 뒤 홀럽 CEO 해임을 요구했다. 옥시덴털은 CEO 해임 대신 아이칸이 추천한 인사 일부를 이사진에 합류시키는 선에서 합의했다.

홀럽 CEO는 다양한 비상경영 조치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엔 30년 만에 처음으로 배당금을 80% 이상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설비투자 및 운영비도 삭감하기로 했다. 자신의 급여를 81% 삭감한 데 이어 다른 임원들의 보수도 평균 68% 줄였다. 미국 내 일반 직원들의 봉급은 최대 30% 삭감했다.

옥시덴털이 지난 5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손실은 22억달러로 기록됐다. 홀럽 CEO는 일부 자산을 매각하는 등 부채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부티크 투자은행인 모엘리스앤드코 등과 검토 중이다. 그는 “지금은 전례 없는 위기”라며 “지속적으로 부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옥시덴털이 파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면서도 “자금 기반이 약해진 상태여서 상당히 불안한 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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