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술에 약한건 벼기생충 때문?
일본인이 술에 약한 건 알콜 분해효소를 만드는 능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린 진화의 결과로 밝혀졌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사카대학 오카다 유키노리 교수 연구팀은 알콜대사효소의 생성능력이 서양인보다 덜 발달한 사실 등 일본인이 과거 1만~2만년 사이 독자적으로 진화한 유전자 29가지를 밝혀냈다. 일본인 17만명의 게놈(유전체)을 분석한 오카다 교수팀의 연구결과는 영국 국제학술지인 '분자생물학과 진화(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저널에 게재됐다.

오카다 교수에 따르면 일본인에게는 'ADH1B'와 'ALDH2'라는 효소를 만드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ADH1B'와 'ALDH2'는 술의 에탄올 성분과 술을 마시면 체내에 쌓이는 유해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다. 체내에서 이 효소를 활발하게 생성하지 못하면 술에 약한 체질이 된다. '일본인은 술에 약하다'는 통념은 1만~2만년 전 일본인의 조상이 알콜분해효소를 생성하는 기능을 억제하는 쪽으로 진화한 결과로써 과학적인 사실이었다.

다만 오카다 교수 팀도 왜 일본인이 술에 약한 체질로 진화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일부 학계에서는 알콜 분해 능력이 떨어지는 신체가 체내의 기생충을 몸밖으로 내보내기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고대 일본인이 벼농사를 시작했을 대 논에 서식하던 기생충과 아메바에 시달린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생물학적으로 술에 약한 이유는 일본인과 유전자가 거의 동일한 한국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오카다 교수팀이 신체적인 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이전에도 동양인은 알콜을 분해하는 능력이 서양인보다 떨어져 상대적으로 술에 약한 대신 알콜중독자는 많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오카다 교수의 연구결과 외에도 유전자 분석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서 이론 상으로만 알려졌던 사실들이 다수 과학적으로 확인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AI 분석결과 일본인은 수만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건너 온 오키나와 계통과 수천년 전 한반도에서 건너온 본토 계통으로 나뉘는 것이 재확인됐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오키나와 출신은 통통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오키나와 계통 일본인은 원래 키가 작고 마른 체형이었다. 현대 오키나와 주민들이 통통한 건 미국식 식습관이 정착된 결과로 해석된다.

학계에서는 새로 밝혀낸 연구결과를 의료목적으로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100만명 이상의 게놈 분석을 진행해 간이나 생활습관질병의 조기발견과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인은 당뇨병 관련 약이 잘 듣는 체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서양인과 달리 일본인은 혈당치를 낮추는 인슐린 계통의 단백질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마른 체형의 일본인은 관절류머티즘이나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살찐 체형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에 걸리기 쉽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