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국채와 회사채를 대량으로 사들여 금융시장에 자금을 쏟아붓는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선다.

일본은행은 27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국채와 회사채 및 기업어음(CP)의 매입 한도를 없애거나 대폭 상향하고,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자금을 확대 공급하기로 했다. 회사채와 CP 매입 한도를 늘린 지난달에 이어 보다 강도 높은 통화완화 정책을 추가해 금융시장에 필요한 자금을 사실상 무제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행이 무제한 양적완화에 나선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본 경제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은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에 일본 전 지역의 경기 판단을 하향 조정했다.

일본은행은 이날 연간 80조엔(약 915조원)인 국채 매입 한도를 없앴다.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을 앞두고 장기금리가 오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추락을 막기 위해 117조엔 규모의 긴급 경제 대책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14조5000억엔은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국채 무제한 매입 조치가 시장금리 상승을 억제해 국채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이미 무제한 국채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행은 또 회사채와 CP 매입 한도를 7조4000억엔에서 20조엔으로 세 배 가까이 늘린다. 15조엔 수준을 기대했던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규모다. 기업의 자금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어서다. 일본은행은 지난달 회의에서 매입 한도를 2조엔 늘렸지만 이미 한도가 턱밑까지 찼다. 지난 10일 기준 일본은행은 회사채 3조2000억엔, CP 2조5000억엔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채와 CP 금리도 2~4년 만에 최고치까지 올라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졌다. 이 때문에 일본은행은 매입 한도를 대폭 늘리는 동시에 만기 1~3년짜리 회사채만 사들이던 매입 대상도 만기 5년짜리 회사채까지로 확대했다.

중소기업의 무이자 대출을 늘리기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담보 요건도 완화했다. 긴급 경제 대책의 하나로 일본 정부는 금융회사가 중소기업에 무이자로 자금을 대출하는 제도를 신설했다. 하지만 금융회사에 대출 자금을 공급하는 일본은행의 담보 요건이 까다로워 대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본은행은 금융회사가 개인에게 빌려준 대출 자산까지 담보로 인정해 대상 담보 자산을 8조엔에서 23조엔으로 늘리기로 했다. 금융회사에 공급하는 무이자 자금이 늘어나는 만큼 중소기업 무이자 대출도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