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청소년 여러 명이 얼굴 등 가격…경찰은 신고 이틀 뒤에 나타나
피해자 "코로나19 이후 태도 변화 피부로 느껴져"
코로나19로 커지는 외국인 혐오…영국 한인유학생도 폭행당해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유학생 김도현(25)씨는 지난 2월 14일 오후 7시께 파운틴브리지 근처 테스코에서 장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김씨는 길을 걷던 중 스코틀랜드 10대 청소년 여러 명과 마주쳤다.

이들 중 한 명이 김씨에게 다가와 다짜고짜 장바구니를 손으로 쳤다.

그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김씨가 장을 본 식품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김씨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나와 싸우고 싶냐"며 김씨의 가슴을 밀쳤고, 이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김씨는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청소년들은 김씨를 따라왔다.

다행히 주변에 있던 40대 커플이 경찰에 신고하자 청소년들은 김씨를 버려두고 도망갔다.

김씨는 20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공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범죄, 증오범죄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제가 동양인이고, 당시 코로나19가 한창 뉴스에 나올 때였다"고 전했다.

그가 곤경에 처한 것은 이때만이 아니다.

최근에도 아침에 에든버러 번화가를 지나가다가 노숙자 2명으로부터 "여기는 스코틀랜드다.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위협을 받았다.

김씨가 휴대전화를 들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대응하자 이들은 그제야 멀어졌다.

김씨는 "저뿐만이 아니고 다른 유학생 후배도 대낮에 현지인들이 쫓아오면서 '병을 퍼뜨리지 말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 발생 이후 현지 경찰과 대학 측의 미온적인 대응도 김씨를 실망시켰다.

폭행 사건 당시 현장에서 신고했지만, 스코틀랜드 경찰은 이틀 뒤에서야 김씨의 기숙사로 찾아왔다.

사건 경위를 설명하자 경찰은 "증오범죄인 것 같다.

우선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진행사항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지난달 이후에는 아예 경찰로부터 소식이 끊겼다.

김씨가 다니던 대학 측도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했다.

김씨는 당시 대학 측과 연계된 기숙사 건물에서 지냈다.

그가 학교 측에 사건을 알리자 "캠퍼스 안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우리가 법적인 책임은 없다.

필요하면 심리 상담은 해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씨는 "영국까지 유학을 올 때는 학교에서 어느 정도 보호를 해준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캠퍼스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말만 했다"고 전했다.

이에 김씨는 이번 사건을 공론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영국 내 한국 유학생과 한인사회가 보다 경각심을 갖도록 알리는 한편, 현지 지역사회에도 변화를 촉구한다는 생각이었다.

코로나19로 커지는 외국인 혐오…영국 한인유학생도 폭행당해
김씨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당한 인종차별적 범죄, 경찰의 미온적 대응을 질타했다.

이에 경찰은 계속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씨는 "영국이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면서 "이곳 경찰은 클럽이나 바에서 사건이 일어날까 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정작 다른 곳에서는 폭행 사건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폭행 용의자인 청소년들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있는 폐쇄회로(CC)TV 여러 대를 조사했지만 대부분은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그는 "한국은 안전한 국가이고 범죄 검거율도 높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다"면서 "한국 교민들, 유학생들이 이런 점을 감안해서 심각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신속한 대처 방법을 미리 숙지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태도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면서 "영국 정부 역시 에든버러, 나아가 영국에 살고 있는 한국 국민을 비롯해 외국인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주영 한국대사관은 최근 교민과 유학생들에 대한 안전공지를 강화하고 있다.

대사관은 "영국 경찰 시스템상 범죄 피해를 신고해도 수 시간 후에 출동하거나 때로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연락이 오는 등 신속한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외국인이 혐오 표현 등을 할 경우 가급적 불필요한 대응을 하지 말고 신속히 현장을 벗어나거나 주위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