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후예인 이탈리아. 오페라와 스파게티의 본고장, 세계인이 꿈꾸는 관광지로 르네상스에 빛나던 나라. 그런 이탈리아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서 복지 모델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위기는 국가와 사회가 그동안 숨겨온 약점을 끄집어 낸다. 전염병 같은 위험 앞에선 더욱 속수무책이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6만500여명으로 전세계 3위, 사망자 수는 2만명을 넘어서며 2위를 기록 중이다.

북부 공업지대 같은 인구 밀집지에서 사망자가 특히 많다. 북부 롬바르디아주 베르가모의 한 지역 신문은 10개 면을 부고로만 채웠다. 의료진은 생존 가능성이 큰 환자 위주로 치료하고 있다. 일부 시신은 영안실이 없어 성당에 안치하고 있을 정도다. 의료진과 장비, 관련 시설 모두 부족하다.

학계와 전문가 집단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산업화된 북부 지역의 대기오염이 심각해 호흡기 질환자가 많았고, 노령화가 진전된 점도 지적됐다. 이탈리아의 65세 이상 고령층 비중은 22.6%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표면적일 뿐이다. 이탈리아 보건대학은 “공공의료 체계의 총체적인 실패가 높은 치명률의 원인이 됐다”고 콕 짚었다.
로마 시대의 화폐.
로마 시대의 화폐.
이탈리아는 모든 국민에게 주치의를 지정하는 나라다. 응급실이나 국영 종합병원에 가면 무료에 가까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정부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공공의료 예산을 계속 줄여왔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의료 투자비율은 평균 10%선이지만 이탈리아는 8% 정도다.

의사들은 공무원 신분이다. 월급도 공무원 만큼만 받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서 택시 기사를 하는 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많은 의사들이 고국을 떠나는 배경이다. 이탈리아의 의료인력 유출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많다.

이탈리아에선 소득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은퇴한 뒤엔 연금 등으로 돌려 받을 수 있는 전형적인 고부담·고복지 국가다. 연금의 지출 규모가 그리스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두 번째로 많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49%에 달한다. 경제 규모에 비해 국가부채 규모가 너무 크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 모두 현금을 뿌려대는 연금 제도와 공공부문을 개혁할 생각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방만한 복지 재정과 퍼주기 정책으로 국가의 성장 동력은 약해질대로 약해졌다. 과도한 세금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은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다. 나라를 먹여 살리는 관광산업은 코로나19로 초토화 됐다. 매년 6200만여명이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관광산업이 전체 GDP의 13%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오히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 지출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금도 심각한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더욱 악화시킬 게 불보듯 뻔하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을 -9.1%로 전망했다. 이탈리아 경제인연합회 역시 GDP가 6% 이상 감소해 11년 만에 최악의 침체를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2의 재정위기’ 우려까지 나온다. 무능력한 정부와 정치력, 국민 의식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현지 언론들은 개탄한다.

이탈리아가 겪는 어려움을 강 건너 불구경만 해선 안된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탈리아와 같은 보편적 의료 국가를 모델로 ‘문재인 케어’를 시도하고 있다. 5년간 41조원을 투입한다. 여야 모두 전국민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선심성 복지 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복지에 쓰는 돈은 결국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공짜는 없다. 빚을 빚으로 돌려 막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세대가 과감하게 나서 나라 살림을 건실하게 바꿔야 한다. 이탈리아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지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