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요동친 16일 서울의 한 금융정보회사 직원이 국제 유가 화면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요동친 16일 서울의 한 금융정보회사 직원이 국제 유가 화면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주요 산유국의 원유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가 1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각국의 원유 재고도 쌓이고 있어서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날 대비 배럴당 1.2%(0.24달러) 하락한 19.87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2년 2월 이후 18년여 만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도 6.45%(1.91달러) 떨어져 27.69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다른 산유국 간 연대체인 OPEC+가 다음달부터 두 달간 하루 970만 배럴씩 감산하기로 합의했으나 수요 감소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달 원유 수요가 종전 대비 하루 평균 2900만 배럴 감소해 1995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적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도 유가 하락을 부채질했다. 미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지난주 새로 비축된 원유 재고량은 역대 최대인 1920만 배럴에 달했다. 시장 예상치(1202만 배럴 증가) 대비 60% 많은 수준이다. IEA는 “올여름이면 전 세계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찰 것”이라며 “유조선 송유관 등 석유 유통망이 전반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인 미국이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행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 역시 악재로 작용했다. 미 텍사스주는 원유 감산을 놓고 수차례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미국은 국가 주도로 원유 사업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민간 업체들이 자율 경쟁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자국 내 셰일업체들의 채굴을 일정 기간 중단시키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주요 산유국들의 경제적 타격은 속속 현실화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산유국인 멕시코의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 ‘BBB’에서 최하위 투자등급인 ‘BBB-’로 하향 조정했다. 국가 경제의 40%가량을 석유에 의존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비상이 걸렸다. 올해 재정 적자가 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급한 대로 달러표시 국채를 70억달러 규모로 발행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국제 유가는 더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 경제주간지 포브스는 WTI 가격이 배럴당 5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