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 전쟁’을 일단 멈췄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 등 23개국 모임(OPEC+)이 공식 감산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최악만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급락한 글로벌 석유 수요에 비해 감산량이 적어서다.

감산 합의에도 유가 '찔끔 상승'…"최악 피했을 뿐 늦었다"
12일(현지시간) OPEC은 “OPEC 등 주요 산유국 23곳이 다음달부터 2개월간 원유를 하루 평균 970만 배럴 줄여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OPEC은 올 7월부터 6개월간은 770만 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는 580만 배럴을 감산할 계획이다. 오는 6월 10일엔 회의를 열고 추가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번 감산량은 당초 OPEC+가 추진한 1000만 배럴보다 다소 적다. 멕시코는 자국 경제 사정을 감안하면 OPEC+가 요구한 40만 배럴 대신 10만 배럴만 감산할 수 있다고 버텼다. OPEC+는 나흘에 걸친 협상 끝에 멕시코 요구를 받아들였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등은 이번 합의와는 별도로 산유량을 더 줄이기로 했다. 3개국이 두 달간 총 200만 배럴을 추가로 감산한다. 이번 감산안만으로 유가 안정을 이루기엔 충분치 않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원유 시장은 시큰둥하다. 유가는 합의 발표 직후 약 8% 급등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자 상승폭을 반납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5월물 가격은 장중 배럴당 24.74달러에 손바뀜됐지만 이후 23.1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OPEC+ 감산 합의가 결렬됐던 지난 10일 대비 상승폭은 1.76%에 그친다.

이번 감산량은 글로벌 석유 과잉 공급 사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이미 쌓인 재고까지 해소하려면 감산량이 2000만 배럴은 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석유 소비량이 이달에만 하루 최대 3000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너무 늦게 이뤄졌고, 규모도 작다고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에드 모스 씨티그룹 글로벌상품거래 총괄은 “지난달 중순부터 다음달 말 사이 10억 배럴이 넘는 원유 재고가 쌓일 것”이라며 “감산 합의가 너무 늦게 이뤄져 유가가 균형을 잡기 전까지 단기 진통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아비 라젠드란 컬럼비아대 세계에너지연구소(CGEP) 부교수는 “각국 간 합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하고 미국의 감산 동참이 불확실한 등 여러 변수가 쌓여 있다”며 “합의 소식에 유가가 올라도 아주 잠깐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 킬듀프 어게인캐피털 창립파트너는 “앞으로 몇 주간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달러 선을 다시 찍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