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교민 인터뷰…"밀라노보다 안정된 모습, 언론 보도와 달라"
"당국 오판이 위기 불러…확산 초기 경제 위축될까 '거리로 나오라' 부추기기도"

"'죽음의 도시'라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사재기 없이 침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탈리아에서도 최악의 인명 피해를 보고 있는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베르가모지역.
이탈리아 정치·경제의 중심인 밀라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 지역은 코로나19 희생자가 폭증하며 현지는 물론 세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성당까지 관이 들어차고 화장장을 24시간 가동해도 넘쳐나는 시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평소 1∼2면이던 현지 신문의 부고가 10개 면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에 더해 30여대의 군용차량이 줄지어 관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장면을 담은 사진·영상은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현지 일부 언론은 베르가모를 '죽음의 도시'로 부른다.

베르가모에선 지난달 한 달간 4천500여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희생자로 집계된 수치는 절반인 2천60명이다.

하루 68명꼴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공식 집계에서 빠진 사망자 규모가 평소 수치를 크게 초과한다는 점을 들어 실제 코로나19 사망자는 더 많을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고 있다.

1일(현지시간) 기준 누적 확진자 수도 9천39명으로, 전국에서 밀라노지역(9천522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죽음의 도시'라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사재기 없이 침착"
섬유산업이 발달한 이곳에도 국제결혼을 한 여성과 사업가들을 중심으로 소규모 한인사회가 형성돼 있다.

베르가모 현지 교민은 코로나19라는 '쓰나미' 와중에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밀라노에 거주하다 3년 전 베르가모로 거주지를 옮긴 한 교민은 최근 연합뉴스에 이메일을 보내 현지 언론 보도와 실제 거주하며 느끼는 분위기는 다소 온도 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민은 "이달 초 롬바르디아주 전체가 폐쇄된다고 발표한 다음 날 잠깐 사재기를 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이후 베르가모는 밀라노보다 훨씬 침착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탈리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베르가모 역시 입장 인원 제한에 따라 식료품을 사려면 줄을 서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선 훨씬 질서정연하고 안정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언론 보도대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사망자 수가 크게 늘어 우려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죽음의 도시'라는 일부 언론 표현은 경험상 다소 과하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죽음의 도시'라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사재기 없이 침착"
이 교민은 "베르가모 주민들은 지금의 상황이 무섭고 싫지만, 다른 나라에서 자신들을 보는 안타까운 시선을 넘어 이러한 참담한 현실을 막지 못한 데 대해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베르가모가 이러한 절박한 상황까지 간 이유로는 당국의 정책적 실책을 들었다.

인근 코도뇨 지역에서 38세 남성이 첫 지역 감염자로 확인된 지난 2월 21일 바로 다음 날 베르가모 지역의 '알차노 롬바르도'라는 곳에서 이탈리아 첫 감염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이미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징후가 명확했지만, 베르가모는 사실상 방치됐다.

정부가 바이러스가 무섭게 확산하던 2월 말 롬바르디아와 베네토주 총 11개 지역에 처음으로 이동제한령을 내릴 때도 베르가모 지역은 쏙 빠졌다.

여기에 더해 당시 지역당국은 주민들이 움츠러들어 경제가 위축되는 것을 막고자 여러 가지 이벤트를 진행하며 오히려 거리로 나와 소비하도록 부추겼다고 이 교민은 전했다.

지역 당국과 주요 기업들의 잘못된 상황 인식과 정책적 오판이 짧은 시간 내에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진 자양분이 됐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