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하락으로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신흥국들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까지 겹치며 신흥국들의 유동성 위기가 갈수록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31일 이란, 이라크, 알제리, 리비아, 앙골라, 베네수엘라 등 6개 산유국이 유가 하락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현금이 부족하고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워 ‘석유 전쟁’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헬리마 크로프트 RBC캐피털마켓 수석상품전략가는 “유가 문제에 안보 위협, 막대한 국가 예산 문제까지 겹쳤다”며 이들 국가를 ‘흔들리는 6개국(shaky six)’으로 지목했다.

이라크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 산유국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알제리는 유가가 배럴당 92달러 수준을 넘어야 정부 재정이 안정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원유 수출길이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하락과 코로나19 사태라는 추가 악재를 맞았다. 이들 6개국 외에도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배럴당 생산가격(29.6달러)이 현재 유가 수준을 넘어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태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신흥국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호 자금을 잇따라 요청하고 있다. IMF는 80여 개 국가가 2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흥국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프런티어 마켓’으로 분류되는 중소 신흥국들의 부채는 3조2000억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다. FT는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아프리카 최대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의 부채 상환 부담이 더 커졌다”며 “신흥국들의 부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