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가운데 발병…전 세계 2천500만∼5천만명 사망
"국제 공조·믿을만한 정보 부족…많은 사람 '자가 격리'"
유럽은 100년 전 대유행 '스페인 독감'에 어떻게 대처했나
전 세계로 확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사상 최악의 세계적 대유행 전염병으로 꼽히는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때의 상황이 유럽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 전문매체 'EU옵서버'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2천500만∼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알려진 치료법이 없던 이 감염병으로 매일 수천 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국제적 공조는 부족했고, 믿을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1918'이라는 제목의 스페인 독감 관련 책을 쓴 영국 학자 캐서린 아널드는 EU옵서버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꽤 유사하게, 스페인 독감은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갑자기 나타났다"면서 "그것은 바이러스성 세계적 유행병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스페인 독감 절정기에는 프랑스 파리에서만 매주 1천200명씩 숨졌다.

1918년 프랑스에 상륙했던 미국군 수송선 '리바이어던'에서는 보병 90명이 대서양을 건너다가 사망했다.

그러나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전쟁으로 이미 2천만명가량이 사망해 여론도 마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 집단적인 공포를 유발하지는 않았다.

의료진들은 전쟁터에서 부상으로 숨지는 대신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에 당황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스페인 독감은 단지 참고 견뎌야 하는 또 하나의 문제일 뿐이었다"고 아널드는 설명했다.

또 당시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은 전쟁으로 바빴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에 대한 공조는 없었다.

아널드는 스페인 독감과 관련한 유럽 국가들의 공동 노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면서, 그것은 유럽이 맞닥뜨린 최대 국제 전쟁의 공포에 추가된 위협에 대처하는 상황에 가까웠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100년 전 대유행 '스페인 독감'에 어떻게 대처했나
EU에서는 최근 코로나19와 관련한 러시아와 중국의 허위 정보에 대해 경고한 바 있는데,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보통의 유럽인들도 믿을만한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아널드는 영국의 경우 당국은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에 대해 가능한 한 장기간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률을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그것이 전시의 집단적 사기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었다.

반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중립을 지켰던 스페인에서는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신문에서 스페인 독감과 그 영향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됐다.

그러나 이로 인해 스페인이 발원지가 아닌데도 이 감염병이 스페인에서 비롯됐다는 잘못된 인상을 줘 허위정보와 외국인 혐오증을 야기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스페인 독감이 정확히 어디에서 발원했는지에 대해서는 공통된 합의가 아직 없다고 밝히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가운데 1918년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스페인 독감을 피하지 못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감염됐고,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유럽은 100년 전 대유행 '스페인 독감'에 어떻게 대처했나
아널드는 1918년 로마에 살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을 거론하면서 "키리코의 작품들에 담긴 텅 빈 광장들과 사람이 없는 역들은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와 오늘날 코로나19 때 나타난 장면들을 묘하게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폴리네르의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등 전염병 국면에서 일부는 '자가 격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아널드는 저서에서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