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극과 극' 한국과 베트남의 코로나19 대응법
‘창궐이냐, 통제냐’. 베트남의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하노이 최대 병원인 박마이(Bach Mai) 병원에서 감염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전국적인 확산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는 29일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다낭, 껀터 등 5대 광역시 인민위원장(시장)과의 긴급 화상 회의에서 “도시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치더라도 물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30일 오전 기준 베트남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94명이다. 3월9일까지만 해도 베트남 내 확진자는 16명이었고, 전원 완치 후 퇴원했다. 분수령이 된 건 3월10일이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24세의 여성이 17번째 감염자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때부터 베트남은 유럽발(發) 감염 확산의 영향권에 들기 시작했다. 유럽 여행객들이 베트남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확진자 수는 하루 10명 내외로 증가했다.

베트남 정부의 대응은 기민했다. 유럽발 항공편으로 귀국한 이들의 동선을 확보하고, 밀접 접촉자들을 격리시켰다. 쌀 수출을 통제하는 등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물자 확보에도 나섰다. 3월20일엔 외국에서 들어오는 모든 항공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20일, 베트남 정부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된다. 최소 하루에 3000여 명이 방문하는 하노이 박마이 병원에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2명(86번, 87번)의 환자가 발생했다. 각각 코로나 감염 외래 조사실과 코로나 감염 격리 환자 접수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다. 30일 현재까지 박마이 병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는 감염자는 총 24명이다.

[박동휘의 베트남은 지금] '극과 극' 한국과 베트남의 코로나19 대응법
29일엔 하노이 시내 원조 한인 타운인 쭝화 거리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은 베트남 관영 매체에 근무하는 기자라고 보도했다. 해당 기자는 하노이 주재 유럽계 대사를 인터뷰 한 뒤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 언론인 등 활동 반경이 넓은 이들이 감염자로 밝혀지면서 베트남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확진 판정을 받은 기자가 근무하는 언론사엔 코호트 격리(동일집단격리) 조치가 취해질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푹 총리가 29일 대도시 봉쇄령까지 언급하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라고 한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베트남 정부는 이미 3월27일 자정을 기해 전국에 사실상 이동중지명령을 내렸다. 식품, 은행, 병원, 공장 등 필수 시설을 제외한 모든 업소에 대해 4월15일까지 영업을 중지시켰다. 29일엔 베트남 국내를 오가는 항공편도 각 항로별 하루 1회로 제한시켰다. 대도시 봉쇄 가능성까지 나오자 한인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하노이 인근 박닌성 산업단지에 있는 한국 업체들은 하노이 주재원들에게 ‘봉쇄령 발동 시 지체없이 사업장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공문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박닌성엔 삼성전자를 비롯해 협력사들이 밀집해 있다.

현재까지의 상황에 대해 박기동 세계보건기구(WHO) 베트남 사무소장은 “29일의 정부 발표는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 태세를 철저히 하라는 의미”라며 “중국 우한에서처럼 도시를 빠져나가는 모든 차량과 항공편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5개 대도시를 모두 봉쇄할 경우 베트남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도시를 봉쇄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마이 병원만 해도 3월20일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이후 열흘 간 감염이 확인된 이들은 24명이다. 이들 모두 의료진과 그들의 가족, 급식, 급수 업체 등 병원 관계자들이다.

베트남 정부는 3월에 박마이 병원을 다녀 간 사람들과 이들의 동선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온라인 의료 검진서 제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유럽발 감염자가 급증하자 베트남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모바일 앱(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의료 검진서를 제출토록 했다. 허위 제출 시엔 강력한 처벌이 부과된다. 이를 통해 박마이 병원과 관련 있는 약 4만 명의 잠재 감염 위험군을 모두 찾아내고, 4월15일까지 전국적인 이동 중지를 통해 코로나19 창궐을 막겠다는 것이 베트남 정부의 목표다.

박 소장은 “우한에선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축제가 열리면서 이를 통해 감염이 확산됐고, 이탈리아는 스키장이 감염의 진원지가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불행 중 다행으로 병원 감염은 코호트 격리가 가능하고, 내원자의 행적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통제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신천지 사례에서도 정부가 신도의 명부를 확보하면서부터 효과적인 통제가 이뤄졌다.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사회적 특성이 코로나19 방역에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극단적인 민주적 방식’으로 방역에 나서고 있다면, 베트남은 ‘극단적인 통제적 방식’으로 감염원을 차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베트남 내 외국인 중 감염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외국인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청년당원 600여 명을 동원해 집중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염 사실을 알고도 수원 일대를 활보한 영국 배낭 여행객과 같은 일들이 베트남에선 발생하기 어렵다.

‘착한 베트남인’들은 정부 방침대로 의료 신고와 자발적인 격리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아파트 곳곳에 붉은색 '일성홍기'가 내걸렸다. 격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베트남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애국심의 표현이다. 정부가 더 강한 이동 중지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29일 총리와의 화상 회의에서 하노이 인민위원장은 영업을 중지한 식당 등 업소의 직원들이 고향에 내려가 전파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일정 시설에 집단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동휘 베트남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