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물품 있어도 어디다 줄지 몰라" 美 기업, 정부 개입 요구
미국에서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 각종 의료·방역용품 유통을 놓고 혼란이 일고 있다. 각 제조·유통기업들이 확보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용 제품을 어디다 얼마만큼 공급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어서다. 각 기업들은 연방정부에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의료용품 제조업체 등 수백개 기업은 지난주에 마스크와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각종 의료장비 재고 내역을 미 연방재난관리청(FEMA)에 보냈다. 의료장비가 긴급히 필요한 지역이나 병원을 당국이 알려달라는 취지다.

미국 의료장비 제조업체 모임인 첨단의료기술협회의 스콧 휘태커 대표는 “각 기업들은 어느 지역에 지원이 더 시급한지 알 방도가 없다”며 “당국이 지역별 할당제 등 의료장비 공급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의료용품 기업들은 제품 공급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느 병원이나 지역에 먼저 물자를 보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워서다.

WSJ에 따르면 미국에선 전역에 걸쳐 마스크, 의료가운, 인공호흡기 등이 부족한 상태다. 의료용품 제조·유통업체 메드라인인더스트리즈의 찰리 밀스 대표는 “기존 고객 모두가 의료장비를 더 확보하길 원하는 상황”며 “일단 기업 차원에서 생산량을 늘려 대응하고 있지만 물자 배분에 대한 결정은 당국이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주(州)정부도 의료물자 분배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지난 24일 “(의료물자 공급은) 기업에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뉴욕주에 인공호흡기 3만개가 필요한데 정부는 4000개를 보내려 한다”며 “그렇다면 당국이 (인공호흡기를 쓰지 못해) 죽을 사람 2만6000명을 정해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WSJ에 따르면 각 주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이 국방생산법을 활용해 의료 물자를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국방생산법에 따르면 정부는 제조업체에 주요 물자 생산을 독려하고, 물자 배분을 지시할 권한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방생산법을 발동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는 물자 분배보다는 생산 증대에 초점을 맞추고 국방생산법을 발동한 모양새”라며 “당국은 일단 제너럴모터스(GM) 등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 보건 당국도 아직 '교통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새다. FEMA 대변인은 WSJ에 “대응해야 하는 사태 규모가 크다보니 각 기업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아직 검토하고 있다”며 의료물자 공급 관련 지침 일정을 밝히길 거부했다. 본 우 토머스제퍼슨대 의대교수는 CNBC에 “비상상황에 의료물자 공급 계획을 짜는 일은 개별 주정부나 병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당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