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 "유엔 안보리서 논의할 것 같다"
이란, 코로나19 대유행 엮어 미국에 '제재 해제 역공'

이란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고리로 미국을 상대로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라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비인도적 제재로 코로나19 검사와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과 의료장비를 수입할 수 없어 이란 국민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간다는 게 이란의 주장이다.

미국의 적대적인 '최대 압박'에 수세적이었던 이란은 어떤 정치적 정당성도 우선할 수 없는 명제인 '인도주의적 위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재를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역공에 나섰다.

이란이 그간 미국 제재의 부당함과 비인도적 조치의 폐해를 꾸준히 역설했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의 반향과 동감을 상당히 일으키는 터라 미국의 변화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4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정상에 보낸 서한에서 "(이란 등) 제재를 받는 나라들이 식품과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의료·보건 용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첼 베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표도 같은 날 북한과 이란을 예로 들면서 미국이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첼레트 대표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국제적 공중보건과 수백만 명의 생명,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제재를 완화하거나 유예해야 한다"라며 "전염병이 대유행할 때 어느 한 나라의 의료적 노력이 저해되면 이는 우리 모두의 위기가 된다"라고 밝혔다.

이란에 대한 제재를 코로나19 대처에 한정해 120일 정도 시한부로 해제해야 한다는 절충안도 제시됐다.

미국 내 이란인 최대 비영리단체인 이란·미국 전국위원회(NIAC)는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 구호단체 옥스팜 미국지부 등 24개 단체가 연명한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국무부, 재무부에 보냈다.

이들은 "대이란 제재 해제는 이란 국민과 전 세계의 공중 보건의 이익을 위해 해야 할 간단한 조처다"라며 "이란이 경제난을 모면하고 코로나19에 맞설 수 있도록 120일간 이란의 원유와 금융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제재를 유예해 달라"라고 요청했다.

이란의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와 중국 역시 이란이 코로나19 방역과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미국에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이란, 코로나19 대유행 엮어 미국에 '제재 해제 역공'

이런 반응에 이란 정부도 고무된 모양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5일 내각회의에서 "곧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모든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안건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어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정상들과 최근 제재 해제를 논의했다"라며 "제재 해제뿐 아니라 해외에 묶인 우리의 돈을 되찾아 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주한 이란대사관이 24일 한국 언론사에 이례적으로 보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란 국민은 미국 당국자의 거짓말 탓에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도 한국의 은행에 동결된 자산을 사용하지 못한다"라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국의 은행 2곳에는 이란이 원유를 판매한 대금 약 7조원이 묶여있다.

이란은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개설된 계좌에 있는 이 돈을 달라고 한국에 요구하지만 이란 중앙은행과 자금 거래를 금지한 미국의 제재 탓에 이를 지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란의 적극적인 국제 여론전에도 미국은 아직 냉담하다.

인도적 물품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저촉 대상이 아니라는 원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25일 트위터에 "로하니 대통령이 이란 정부가 우한 바이러스 대처에 총체적으로 실패한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이유를 만들어 내는 대신 우리의 인도적 지원 제안에 '예'라고 말하는 게 이란 국민을 위해 더 낫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이란 경제전문 언론인 데스판디야르 바트만겔리드즈는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이란이 직면한 보건 체계 문제는 미국의 제재 대상이 어떤 것이냐가 아니라 인도적 물품에 대한 예외가 실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며 "폼페이오는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제재의 예외로 지정한 인도적 물품은 의약품과 의료 기기인데 질병 치료용으로 좁게 정의했다"라며 "이 기준에 따르면 안면 보호경과 같은 의료장비는 산업용일 수 있다는 이유로 인도적 물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CT 촬영기, 인공호흡기와 같은 의료장비는 바이러스 대처에 필수적이지만 미 재무부는 별도로 허가받도록 강제한다"라며 "비록 인도적 물품이라도 주요 은행이 이란과 거래는 꺼리기 때문에 제약·의료 업체가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할 위험이 큰 게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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