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최대 2년 늦추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처음으로 올림픽을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예정대로 대회를 열면 선수단 파견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버티던 아베·IOC "올림픽 연기 검토"…전세계 성토 빗발치자 '백기'
IOC는 22일(현지시간) 임시 이사회를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함에 따라 오는 7월 24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을 연기하는 의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IOC는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 일본 정부, 도쿄도 등과 협의를 거쳐 4주 내에 결론을 내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을 여는 것이 곤란한 경우는 선수의 안전을 제일로 생각해 연기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올림픽 연기’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OC와 일본 정부 모두 연기 시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OC 관계자를 인용해 “2021년 가을 또는 2022년 개최 등 몇 가지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2021년 여름으로 1년 연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완전한 형태의 올림픽’에 대해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관중과 함께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의 확산 상황과 다른 대형 스포츠 대회의 일정 등을 고려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다만 “중지는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은 IOC도 동의했다”고 밝혀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IOC는 지난 17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대회를 예정대로 개회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불과 닷새 만에 방향을 튼 건 세계적으로 IOC의 무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19일 스페인 올림픽위원장이 도쿄올림픽 연기를 주장한 데 이어 슬로베니아와 콜롬비아 올림픽위원장도 올해 개최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노르웨이 올림픽위원회는 20일 IOC에 연기를 요청하는 공식서한을 보냈다. 미국 수영연맹, 영국 육상연맹 등 주요국 스포츠 경기단체도 올림픽 연기를 촉구했고, 다카하시 하루유키 도쿄올림픽조직위 집행위원과 야마구치 가오리 이사 등 일본 내부 인사들조차 ‘대회 연기’를 요구하는 행렬에 동참했다.

급기야 이날 캐나다 올림픽위원회는 1년간 대회를 연장하지 않으면 선수단 파견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동참하면서 선수도 관중도 없는 올림픽이 될 위기에 몰렸다.

다음달 말 IOC가 올림픽 연기를 최종 결정해도 남은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당장 오는 26일 시작할 예정이던 전국 성화봉송 릴레이를 진행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1년 연기하면 또 다른 메이저 세계 스포츠 행사인 육상 및 수영 세계선수권 대회와 일정이 겹치고 2022년으로 연기하면 2024년 파리올림픽의 가치가 떨어져 프랑스가 크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9월 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나면 자민당 총재 임기를 1년 앞두고 의회를 해산해 선거를 치를 구상이었던 아베 총리의 정국 운영도 꼬인다.

일본 정부의 경제적인 부담도 막대하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도쿄올림픽을 유치하고 준비하는 데 35조원을 썼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하면 시설 유지와 대회 준비에 최대 250억달러(약 31조원)가 추가로 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