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안이한 인식에 초기 방역 실패
환자 확 퍼지자 국경 차단 뒷북

강경민 런던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 코로나 막아라…장갑차까지 동원 > 1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군인이 장갑차에 탄 채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 지대를 감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자 세르비아에서는 불법이민 등을 막기 위해 군이 직접 국경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코로나 막아라…장갑차까지 동원 > 1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군인이 장갑차에 탄 채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 지대를 감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자 세르비아에서는 불법이민 등을 막기 위해 군이 직접 국경을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누적 확진자 9만2000여 명. 사망자 4200여 명’.

19일 오후 1시 (한국시간) 기준 유럽 보건당국이 집계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럽 현황이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의 확진자(8만928명)와 사망자(3245명) 수를 훨씬 웃돈다. 확산 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이날 하루 새 1만5000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럽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진원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유럽에 코로나19 재앙이 닥친 이유는 뭘까. 현지 전문가들과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지도자들의 안이한 인식에 따른 초기 방역 실패 △국민의 경각심 부족과 밀접 접촉하는 문화 △부실한 의료인프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메르켈·마크롱의 헛발질…이동 자유 고집하다 유럽 '코로나 재앙'

한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지난달 말과 이달 초까지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은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아시아에 국한된 전염병으로만 봤다. 대규모 관중이 모이는 스포츠 경기도 평소처럼 치러졌고, 도심의 음식점과 관광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인접 국가에서도 검문 강화 및 국경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럽 주요 공항에선 이탈리아발 항공편 승객에 대한 발열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입국 제한과 국경통제 등은 감염병 방역의 기본 원칙이지만,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조약에 막혀 금기시됐다. 유럽연합(EU) 양대 축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동 제한이)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적극 동조했다. 유럽 지도자들이 코로나19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럽 각국 정부는 뒤늦게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스페인 등은 이달 들어 주민이동 금지령과 상점 폐쇄에 나섰다. 독일과 프랑스는 주변 국가가 국경을 폐쇄하자 돌연 입장을 바꿔 검문 강화와 국경통제에 앞장섰다. 영국은 런던 봉쇄를 준비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제서야(현지시간 18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도전”이라고 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전문가도 아닌 우리 정치인들이 코로나19를 과소평가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유럽 국민의 무감각도 한몫했다.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접촉 강도가 높은 문화를 갖고 있다. 볼키스와 포옹 등이 일상적이다. 식당 테이블도 넓지 않다. 코로나19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유럽 국민은 무시했다. 평소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다. 확 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마스크도 쓰지 않고, 열이 나면 감기약을 사는 정도의 대처에 그쳤다.

유럽 정부는 마스크 착용도 권고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동양인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 혐오 차별이 유럽 곳곳에서 벌어졌다. 유럽 전역이 비상사태로 접어든 이달 초중순이 되자 현지에서도 마스크를 서둘러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스크 공급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유럽에선 마스크를 구할 방도가 없다. 의료진과 환자를 위한 마스크조차 부족해진 상황이다.

유럽의 부실한 의료시스템이 코로나19 사망자 급증을 초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에선 코로나19 중증환자를 수용할 병상조차 부족하다. 병상이 부족하다 보니 모든 비(非)응급 수술을 전면 연기했다. 유럽에는 한국처럼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놓고 하루에 2만 명을 검사할 수 있는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영국조차 하루 5000명 정도를 검사하는 데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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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각국 마트에선 위생용품과 즉석식품, 휴지 등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현지에선 이런 현상을 ‘패닉 사재기’라고 부른다. ‘생필품 공급은 충분하다’는 정부의 잇단 발표에도 생필품은 진열되자마자 동이 나는 패닉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마스크를 제외하면 어떤 사재기 현상도 찾기 어려운 한국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선진국임을 자임해왔던 유럽의 현실과 보건 역량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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