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로 넷플릭스 추격한다

무뚝뚝해도 공감 능력 탁월
코로나19 여파 부담도
B2C 분야 베테랑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밥 채펙은 지난달 25일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에 ‘깜짝 임명’되면서 미국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CEO 교체였다. 전임인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2005년부터 15년간 CEO 자리를 맡은 스타 경영인이었다. 업계에선 이미 네 차례나 임기를 연장한 그의 임기가 또 한 차례 연장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아이거 전 CEO의 갑작스러운 퇴진에 시장은 우려를 나타냈다. 아이거 전 CEO에 비해 채펙 신임 CEO는 알려진 게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디즈니 주가는 뉴욕증시에서 3.6% 하락했다. 미 CNN방송은 “디즈니는 여전히 장점과 기회를 가진 회사지만 전반적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며 “새 밥(채펙)이 이전의 밥(아이거)과 이름 이상의 것을 공유하길 바랄 뿐”이라고 평했다.

○“1시간 식사하면 58분30초가 일 얘기”

이름은 ‘밥’으로 같지만 아이거 전 CEO와 채펙 신임 CEO가 걸어온 길은 크게 다르다. 아이거 전 CEO는 방송국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디즈니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서 TV와 라디오방송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ABC방송에 입사했다. 첫 업무는 일기 예보 담당이었다고 한다.

그는 40대 들어서야 관리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마이클 아이즈너 ABC 회장의 발탁으로 ABC네트워크텔레비전그룹 사장에 올랐다. 1996년 ABC방송이 월트디즈니에 매각된 뒤 소속이 디즈니로 바뀌었다. 2005년 디즈니 CEO로 선임됐다.

반면 채펙 CEO는 차근차근 내공을 쌓은 스타일이다. 그는 1960년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던 미국인 아버지와 워킹맘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있는 클라크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디애나대 미생물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땄다.

첫 직장은 글로벌 식품회사 하인즈(현 크래프트하인즈)였다. 이곳에서 브랜드 관리 업무를 맡았다. 이후 글로벌 광고대행사 제이원터톰슨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세 번째 직장인 디즈니에 입사했다.

채펙 CEO는 입사 초기 디즈니 홈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다. 디즈니 제품을 비디오로 배급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그는 이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배급 총괄 사장에 올랐다. 채펙 CEO는 2011년 9월 디즈니 소비 프로덕션 사장으로 임명됐고, 영화 사업을 상업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11년 디즈니 소비재 부문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비용을 절감하는 사업 재정비를 총괄했다.

2015년 2월엔 디즈니의 테마파크를 총괄하는 디즈니파크앤드리조트 회장직을 맡았다. 28년여간 디즈니에서 일한 그는 디즈니 역사상 일곱 번째 CEO라는 타이틀을 안았다.

두 CEO는 성격도 다른 부분이 많다고 알려졌다. 전직 디즈니 고위 간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아이거 전 CEO는 카리스마 있고 외향적이며 말이 많다”며 “그에 비해 채펙 CEO는 자잘한 것에 관심이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채펙 CEO와 1시간 동안 식사하면 58분30초가 일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공감 능력은 두 CEO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디즈니의 다른 관계자는 “채펙 CEO는 창의성이 뛰어나고 현대 기술을 이용해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선견지명을 가졌다”고 묘사했다. 아이거 CEO 역시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그는 몇 년 전 미국 UCLA 대학원이 개최한 경영강좌 프로그램에서 “CEO는 소통 단절과 고립에 유의해야 한다”며 “CEO가 권력을 쥐면 자연히 젊은 직원들과 대화할 기회가 줄어들게 되는데, 소통하지 못하면 새 아이디어를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OTT·코로나19 등 과제 산적

아이거 전 CEO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디즈니의 최고 전성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전까지 디즈니의 이미지는 미키마우스와 백설공주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회사에 그쳤다. 1923년 설립된 디즈니는 1937년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를 제작해 흥행에 성공했다.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디즈니랜드를 설립해 세계적인 테마파크로 키웠다. 1991년 5월 미국 증시에 입성했다.

100년 역사의 이 회사는 2005년 아이거 CEO가 임명될 당시 고리타분하다는 비판을 들었다. 아이거 CEO는 승부수를 던졌다. 2006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를 인수한 이후 2009년 마블, 2012년 스타워즈 소유권을 가진 루카스필름을 각각 사들였다. 작년엔 713억달러 규모의 21세기폭스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샀다. 매너리즘에 빠진 디즈니가 이들과의 M&A를 통해 콘텐츠,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그 바통을 받은 채펙 CEO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산적한 과제도 많다. 우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있다. 디즈니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는 출시 첫날에만 1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는 3개월 만에 2860만 명을 넘어섰다. 디즈니+는 서비스 국가를 늘려 업계 1위인 넷플릭스를 추격할 계획이다.

세계에 확산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도 부담이다. 중국 상하이 디즈니파크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운영을 중단했다. 전 세계 영화관도 코로나19 사태로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흥행 성적에 빨간등이 켜졌다.

○소비자 직접 판매 늘 듯

업계에선 채펙 CEO가 소비자를 직접 공략하는 B2C(기업 소비자 간 거래)의 베테랑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할지 관심을 보인다. 아이거 전 CEO는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배급업체에 판매하는 B2B(기업 간 거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CNBC방송은 “디즈니는 점점 줄어드는 케이블 가입자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채펙이 위기에 적합한 CEO라는 평도 있다. 채펙 CEO는 디즈니파크앤드리조트 회장을 맡은 2015년부터 작년까지 단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이 사업부문의 매출을 두 자릿수 성장세로 키웠다. 예외였던 1년의 매출 증가율도 9%에 달했다. 한 디즈니 관계자는 “채펙 CEO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숫자로 된 명확한 결과를 전달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고 말했다. 채펙 CEO는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밥(아이거 전 CEO)이 회사에 남긴 유산을 따를 것”이라며 “내 역할은 그가 지난 15년 동안 그렇게 잘 구축해 온 전략을 연구해 이를 시장에서 이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펙 CEO의 임기는 2023년 2월까지다. 그는 급여 250만달러와 성과급 1500만달러 등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아이거 전 CEO 역시 고연봉으로 유명했다. 그는 2018년 기준 급여와 보너스 등을 합쳐 6600만달러를 받았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