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사태 인지, 완전치 못했던 방역, 안전불감증 등 거론

이탈리아, 왜 코로나19 최악의 확산 국가됐나…몇가지 추론들
'누적 확진자 1만2천462명, 누적 사망자 827명, 치명률 6.6%'
11일(현지시간) 기준 서유럽 이탈리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현황이다.

지난달 21일 바이러스 확산 거점인 북부 롬바르디아주(州)에서 첫 지역 감염 사례가 확인된 이래 20일 만의 일이다.

유럽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피해가 큰 프랑스의 누적 확진자가 12일 기준 2천281명, 사망 48명이니 이탈리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탈리아발로 각국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나온 사례도 20건이 넘는다.

이탈리아 상황이 이처럼 급속하게 악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 보건당국도 여기에 대해 똑 부러지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다만, 당국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몇 가지 추론은 가능해 보인다.

이탈리아, 왜 코로나19 최악의 확산 국가됐나…몇가지 추론들
◇ 너무 늦은 첫 대응?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월 말 로마에 체류하던 60대 중국인 부부 관광객 두 명이 처음으로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3개월간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 대만 등을 오가는 직항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과잉 대응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지만 신속하고 적절한 조처라는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연구진들은 이미 1월 중순부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도 최근 공개된 바 있다.

1월 중순 북부 롬바르디아주(州) 코도뇨 인근에서 비정상적인 폐렴 환자가 여러 명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다.

지난달 21일 첫 지역 감염자가 나왔을 때는 이미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첫 감염자가 인지된 뒤 확진자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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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대 감염병 전문의인 마시모 갈리 교수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이 나 건물 1층을 거의 태운 뒤에야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황과 비슷하다"고 비유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누군가가 잠복기 단계에서 이탈리아에 들어왔고 무증상 또는 가벼운 감기 증상 속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으로 본다.

작년 12월 말 중국에서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이후 국경 검문 강화 등 일련의 대응을 했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 보균자가 잠복기 단계에서 들어왔다면 걸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찌 됐든 정부의 인지가 늦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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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꼼하지 않은 방역?
현지 보건당국에서 지목한 첫 지역 감염자는 코도뇨에 사는 38세 남성이다.

이탈리아 언론에서 '1번 환자'로 명명된 그는 지난 21일 코도뇨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근래 중국을 여행한 적은 없으나.

역학조사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중국을 다녀온 지인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국은 이 지인을 비롯해 주변 중국인들을 상대로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했다.

중국과의 관련성에 초점을 맞춘 역학조사였다.

1번 환자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이른바 '0번 환자'가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 우한과 허베이성을 방문한 자국민이거나 혹은 중국인일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0번 환자는 확인되지 않았고 그 지점에서 역학조사는 벽에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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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현지에선 0번 환자가 유럽 출신 방문객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럽인은 '솅겐 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과 접한 국경 지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우한 등 위험지역을 방문한 유럽인이 제3국을 거쳐 이탈리아로 넘어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현지 언론에서는 유럽 첫 코로나19 감염자가 독일인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물론 이탈리아 북부엔 섬유업종에 종사하는 중국인들이 많은 데다 우한 등과의 인적·물적 교류도 많아 중국인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

하지만 초기 방역과 역학 조사 단계에서 유럽 출신 방문객을 배제한 것은 큰 실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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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인의 안전불감증?
최근 들어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유럽에서도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것으로 유명하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수시로 '볼 키스'를 하는 등 친밀감 표현에 스스럼이 없다.

근접 거리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장시간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지인들과의 사적 모임도 잦다.

바이러스가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산할 때도 이런 생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젊은 층 사이에선 코로나19가 일종이 독감이라는 인식도 팽배하다.

독감처럼 잠깐 앓고 지나가는 유행 질병이라는 것이다.

피렌체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밀라노를 다녀온 직장 동료들이 아무런 경각심도, 제지도 없이 자연스럽게 출근해 사람들과 만나 얘기 나누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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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국 이동제한령에 이어 11일 약국·식료품점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식당·술집 등 모든 업소를 폐쇄 조처하며 연일 대책 수위를 높여가는 것도 이탈리아인들의 생활 방식과 습관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바이러스 확산 속도는 늦추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호흡기 관련 질병이 있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마스크 착용을 꺼리는 사람들의 생활 태도도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수가 조금씩 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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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거론되는 것은 바이러스 확산 시점이 독감 유행 시점과 겹쳤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인들은 특별한 합병증세가 없는 한 독감 정도로는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겨울철 한번은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열 증세로 병원에 가더라도 해열제 처방을 해주는 게 전부다.

감염자들 역시 폐렴 같은 심각한 증상이 아닌, 전형적인 감기 증세를 보였다면 병원 진료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에서 1월 중순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진 게 맞는다면 이런 배경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