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석유 증산 전쟁'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3위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도 가세했다. 이들 국가는 단기적인 원유 증산을 넘어 산유 능력을 높여 생산량을 대폭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산유국들 간 석유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국제 유가는 급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치고 있다.

UAE 최대 석유기업인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11일(현지시간) “4월부터 하루 산유량을 기존 300만 배럴에서 400만 배럴로 늘리겠다”며 “이후 하루 500만 배럴까지 산유 능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UAE의 투자자문사 블랙골드인베스터스의 개리 로스 창업자는 "산유국 간 시장점유율 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날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리야드증시(타다울)에 낸 공시에서 “지속할 수 있는 산유 능력을 하루 1300만 배럴까지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람코의 지난달 하루 평균 생산량 970만 배럴보다 34% 증산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아람코의 지속 가능한 산유 능력을 1200만 배럴 수준으로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가 전략 비축유까지 시장에 쏟아붓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사우디는 또 저유가 국면을 맞아 시장점유율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4월 선적분 원유 수출 가격을 3월보다 배럴당 6∼10달러(아랍경질유 기준) 내렸다.

러시아 정부도 지난 10일 원유 증산에 나설 계획을 내비쳤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러시아 석유회사들은 하루 최대 50만 배럴까지 증산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의 산유량은 하루 1130만 배럴 수준이다.

앞서 사우디가 주도하는 OPEC은 지난 6일 러시아를 비롯한 주요 비OPEC 산유국과 추가 감산을 논의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사우디는 3월 말로 감산 시한이 끝나는 즉시 4월부터 산유량을 늘리는 공세적인 전략으로 돌아섰다.

거대 산유국인 사우디와 러시아는 지난 3년간 지정학적 변수가 발생할 때마다 산유량을 조절하면서 유가를 유지해왔으나 이들의 공조가 급격히 무너진 것이다.

산유국들의 증산으로 국제 유가가 내려가면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셰일오일은 중동 산유국의 유전보다 생산 단가가 높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이어야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사우디의 추가 감산 요청에 반대한 것도 미국 셰일오일 산업에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미국은 지난 3년간 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가 유가를 떠받친 덕분에 셰일오일 생산량을 늘려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중동 산유국과 러시아의 석유 증산 전쟁에 미국이 파편을 맞게 됐다. 블룸버그통신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원유 시장 주도권을 놓고 미국을 숙명의 대결로 끌어들였다"고 보도했다.

산유국 간 석유 전쟁이 확대되며 국제 유가는 다시 급락세를 보였다. 11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1.38달러(4.0%) 내린 32.9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은 지난 9일 24.6% 폭락했다가 10일엔 10.4% 반등하는 등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최근 수년간 국제 원유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이고 주요 산유국의 원유 재고도 충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