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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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미국 뉴햄프셔주 도버시에서 헬스클럽 한 곳이 문을 열었다. 이곳의 가격 정책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일반 회원은 월 10달러, 프리미엄 멤버십 회원도 월 22달러만 내면 24시간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미국 주요 피트니스센터의 월 회비가 100~13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운영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저가 정책은 성공했다. 이 업체는 설립 23년 후인 2015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기준 회원 수 1250만 명, 지점 수 1724개를 달성했다. 미국의 최대 피트니스 기업 플래닛피트니스의 성장 스토리다.

○2000번째 헬스클럽 개장

피트니스 프랜차이즈인 플래닛피트니스는 지난달 콜로라도주에서 2000번째 헬스클럽을 개장했다. 1992년 창업한 지 18년 만이다. 크리스 론도 플래닛피트니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의 목표는 피트니스계의 맥도날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고, 빅맥처럼 언제 어느 매장을 가도 기대했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지향한다는 설명이다.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는 플래닛피트니스 주가는 지난 11일 기준 62.63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이 회사 주가도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달 21일에는 역대 최고가인 87.52달러를 찍기도 했다. 3년 전만 해도 20달러 언저리였던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플래닛피트니스는 지난해 매출 6억8800만달러(약 8200억원)를 기록했다. 한 해 전보다 20.2% 뛰었다. 순이익은 1억3540만달러로 역시 31.2%나 급증했다. 순이익률이 20%에 육박한다. 플래닛피트니스가 지난해 개장한 헬스클럽은 총 261개. 이 회사 창업 이래 최다 기록이다. 그만큼 성장세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플래닛피트니스는 현재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등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지점을 넓혀가고 있다.

론도 CEO는 “플래닛피트니스의 사업 모델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국내외에서 헬스클럽 수를 두 배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더욱 쉽게 운동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먼 자리에 주차

론도는 회사 창업 이듬해인 1993년 입사했다. 19세인 그가 맡은 첫 직무는 프런트 데스크 접객원이었다. 론도는 “2003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승진할 때까지 회사 내에서 진행하는 거의 모든 업무를 경험해 봤다”고 말했다. “어떤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을 받은 덕분에 2013년에는 CEO로 승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론도는 COO 선임 이후 20년 가까이 일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운동하고 7시30분에 출근한다. 사무실에서 가장 먼 자리에 주차해 직원들이 좀 더 좋은 자리에 차를 댈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매일 8시30분에는 임원 회의를 주재한다.

론도가 플래닛피트니스 헬스클럽에 도입한 대표적 콘셉트는 ‘평가받지 않는 공간’이다. 보디빌더 같은 몸매를 만들려는 사람이 아니라, 건강관리를 하고 싶은데 막상 헬스클럽을 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헬스클럽을 뜻하는 ‘짐(gym)’과 위협, 두려움이라는 뜻의 ‘인티미데이션(intimidation)’의 합성어인 짐티미데이션(gymtimidation)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헬스클럽에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꿰뚫어본 것이다. 론도는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지애도 생기고 운동에 너무 심각하게 접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미국의 피트니스 시장 규모는 연 300억달러(약 36조원)에 달하지만, 헬스클럽에 다니는 인구는 20%를 밑돈다. 많은 헬스 기업들이 그 20%를 잡기 위해 고급화,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플래닛피트니스는 헬스클럽을 다니지 않는 나머지 80%를 타깃으로 삼았다. 초보 회원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회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러닝머신과 사이클 등 유산소 운동기구와 기본적인 근력기구로만 공간을 구성했다.

개인트레이너(PT)를 두지 않지만, 직원을 부르면 기구 사용법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했다. 1주일 단위로 요일마다 신체 부위별로 운동 방법을 가르쳐주는 30분 무료 수업도 마련했다. 어떤 기구를 얼마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하는 ‘PF 익스프레스 존’도 구성했다. 운동기구들에 매겨진 번호 순서대로 운동하면 일정한 효과를 내도록 한 공간이다. 벽에 달린 신호등이 초록색일 때 60초 운동하고 빨간불로 바뀌면 30초 동안 쉬면서 다음 기구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플래닛피트니스의 또 다른 특징은 ‘멍청이 경보’다. 무거운 역기를 들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내던지듯 내려놓으면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회원에겐 스태프가 경보를 울려 주의를 준다.

○가맹점주가 행복해야 회원도 행복

론도는 헬스클럽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파격 아이디어도 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이 회사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가 됐다. 매월 첫째주 월요일에는 피자, 둘째주 화요일에는 베이글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론도는 “무리하지 말고 오래오래 운동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초보자들이 처음 며칠 동안 열심히 운동하다가 한두 번 틀어지면 발길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론도는 ‘모범을 보이는 리더십’을 중요시하는 경영자다. 그는 “회사에 대한 CEO의 열정은 직원들에게 전염된다. 직원들이 회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것이 회사 성공의 열쇠”라고 말했다.

론도는 회사 성장의 파트너인 헬스클럽 오너들과의 관계도 중요시한다. 그는 “프랜차이즈가 첫 번째 고객이며 회원은 두 번째 고객이다. 가맹점주가 행복하지 않으면 회원들에게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