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원유시장 가격 전쟁에 나서면서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알제리 리비아 등 중동 각국이 상당한 재정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당초 사우디 주도 감산안에 동의했던 중동 각국이 입을 손해가 감산안을 거부한 러시아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우디, UAE, 알제리, 리비아, 이라크, 이란 등 걸프 6개국은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안팎을 유지할 경우 1400억 달러(약 167조원) 가량 재정 적자를 보게 된다.

OPEC(석유수출국기구) 주요 국가와 러시아 등을 비교했을 때 원유 가격 하락시 UAE, 알제리, 리비아 등의 타격이 타국보다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는 원유 수출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 국가 재정을 맞추기 위한 유가 기준이 타국보다 높기 때문이다.

FT에 따르면 알제리와 리비아는 유가가 100달러 안팎은 되어야 재정 균형을 이룰 수 있다. OPEC 2위 생산국인 이라크는 상대적으로 원유 생산비가 낮은 편이지만 국가경제에서 원유 의존도가 높다. 여기다 작년 수개월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이후 내정 불안이 심해 유가 폭락 영향이 클 전망이다

FT는 바레인과 오만 등도 유가 폭락으로 인한 위험도가 큰 나라로 꼽았다. 다른 부유한 걸프국에 비해 경제가 약하다보니 금융 완충장치가 적어서다. FT는 "오만은 원유 수출이 국가생산량(GDP)의 약 22%를 차지한다"며 "유가가 30달러 선에서 횡보할 경우 오만의 재정적자 폭이 역내에서 가장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재로 서방국과 거래가 끊긴 이란은 이론적으로는 정부 지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원유 가격을 배럴당 195달러는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작년 원유 수출 예외까지 종료되면서 이미 생산량이 크게 줄었고, 기존에 중국과 암암리에 원유 거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사우디발 증산 여파가 크게 미치진 않을 전망이다.

부유한 걸프국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UAE는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사우디는 83달러는 되어야 재정 균형을 본다. 각국이 이미 유가 50달러선에서도 정부 적자를 세금 인상 등으로 충당하던 와중에 유가가 확 내렸다.

FT는 "OPEC 회원국 등은 외환보유고를 털거나, 정부 적자를 늘리거나,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국내 유가를 높여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가격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다. FT는 IMF 자료 등을 통해 "러시아는 유가가 35달러 안팎만 돼도 국가재정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썼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러시아 예산은 우랄산 원유가 배럴당 42.4달러에 팔린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FT는 "중동 각국은 사실상 원유 수출이 정부지출 대부분을 뒷받침한다"며 "사우디가 가격전쟁에 돌입하면서 이웃나라 경제에 시한 폭탄을 설치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러시아와 사우디 등은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주요 산유국 간 회의에서 원유 감축안에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에 사우디가 협상력을 올리겠다며 공격적 증산 카드를 꺼내 들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