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한국시간 4일 0시) 예정에 없던 성명을 발표했다. 연 1.50~1.75%인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시장에 공포가 퍼지자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화상회의를 열고 코로나19에 대응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한 직후였다.

당초 Fed는 오는 17~18일 열리는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 폭은 0.25%포인트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금리 인하 시기도 당기고, 그 폭도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결정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밤 FOMC 위원들이 화상회의를 한 뒤 만장일치로 금리 인하를 승인했다고 전했다. 정례 회의가 아니라 중간에 긴급히 금리를 내린 것이나, 한꺼번에 0.5%포인트를 내린 것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후 처음이다.

Fed는 성명에서 “미 경제의 펀더멘털은 여전히 강하지만 코로나19가 경제활동에 점점 더 큰 위험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경제를 지지하기 위해 적절히 행동할 것”을 또다시 강조해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코로나 불안심리 되레 부추긴 'Fed의 빅컷'…뉴욕증시 급락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이날 연 0.7%까지 낮아졌다. 2회 이상의 추가 금리 인하가 반영됐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설명이다.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물인 미 10년물 국채 금리도 장중 연 0.906%까지 급락했다가 연 0.990%에서 마감했다.

하지만 뉴욕증시는 Fed의 조치와는 반대로 움직였다. 장 초반 200포인트가량 내리다가 잠깐 상승세로 돌아섰으나 다시 미끄럼을 탔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오전 11시부터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 다우지수는 결국 785.91포인트(2.94%) 하락해 25,917.41에 마감했다. S&P500지수는 2.81%, 나스닥지수는 2.99% 하락했다.

씨티그룹은 “Fed의 갑작스런 금리 인하가 코로나19 확산이 당초 예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확인시켰다”고 설명했다. 긴급 금리 인하가 오히려 시장 불안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WSJ는 ‘금리 인하는 기적의 해결책이 아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Fed가 경기 부양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은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통적 금리 정책은 수요 측면에 대응해 효과를 봤지만 이번 같은 공급 측면의 문제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진단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에 나와 “낮은 금리가 바이러스를 치유할 수도 없고 망가진 공급망을 되살릴 수도 없다. 탄약이 부족하면 아껴야 한다”고 Fed를 비판했다.

4일 아시아 증시도 한국을 제외하곤 모두 큰 폭의 반등에 실패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0.08% 상승에 그쳤다. 상하이종합지수는 0.63%에 그쳤고 홍콩항셍지수는 0.24% 하락했다.

시장에선 Fed가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Fed가 3월과 4월 FOMC에서 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더 낮출 것으로 봤다. JP모간은 “Fed가 3월 0.5%포인트를 추가로 인하해야 한다면 바로 제로금리까지 내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이 선제적 행동에 나서면서 다른 나라들도 뒤따를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Fed의 결정은 세계 다른 중앙은행의 완화 물결에 대한 전조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 역시 “다른 중앙은행과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호주에 이어 캐나다, 영국 등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사실상 제로금리 상태여서 다른 수단을 동원할 전망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조만간 시중은행에 공급하는 정책자금의 금리인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대출 금리를 더 내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계은행도 코로나19에 대응하려는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120억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